고향은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리움의 표현
따스함·넉넉함의 원불교 공동체 회복 필요

이번 추석연휴는 역대 최장이라는 이름으로 전 국민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오랜 기간을 함께 쉬었다. 인천국제공항은 출입국 인원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명절에 처음으로 친가와 처가를 다 들렀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고향으로 향한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많은 이야기들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대한 생각들이 예전보다는 많이 옅어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언제나 고향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긍정적이고 따뜻하다. 사전적 의미의 고향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 정도인 듯하다.

중국인들이 2박3일 입석 기차로 찾아가는 고향을 고작 몇 시간 귀성길 교통체증을 핑계 삼아 역귀성이나 가족여행으로 전환하는 것은, 고전이란 '좋은지 알면서도 읽지는 않는 책'이라고 이야기한 어느 작가의 말을 응용하자면 우리에게 고향이란 '그립기는 하지만 일 없이는 찾아가지 않는 곳' 정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고향은 단순히 어떤 땅이나 지역, 대상을 일컫는 말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고향은 관계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며, 사람과 대상과의 관계이다. 부모형제도, 친구도, 사랑도, 자연도 태어나 처음으로 만들어진 숱한 관계들을 우리는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영광과 익산을 재가출가가 입버릇처럼 고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한 지명 이전에 그 속에서 이루어진 숱한 관계와 인연,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어떤 그리움의 표현인 탓이다. 법신불이 마음과 만물의 고향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도 그러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역귀성과 명절 가족여행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를 정의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마치 우리가 교당과 교무와의 관계 속에서만 신앙생활을 한정하는 것처럼.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이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자, 예수는 '너희 안에(within, midst)' 있다고 답했다. 이 구절을 '너희 사이에(among)' 있다라고 번역한 판본도 있다. 어쩌면 법신불은 우리(만물) 안에도 있고, 우리(만물) 사이에도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는 우리 사이에 있는 법신불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본다. 아니 우리 사이를 너무 좁은 시각에서만 한정한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본다.

건축가 승효상씨가 '우리나라의 집합 주택에는 사람들이 붙어 살 뿐 공동의 삶이 없다. 모여 사는 삶이 있어야 공동 주택이다'고 했다. 나는 이 글에서 집합 주택이라고 읽고 원불교라고 생각했다. 모여 사는 삶. 이른바 공동체로서의 원불교를 이야기하기 어렵다보니 당연히 '저는 원불교 교도입니다' 라고 이야기하기보다 '무슨 교당 교도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교당이라는 물리적 구분과 교구라는 논리적 구분속에서 교당과 교구, 그리고 교단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고향이라는 단어에서 찾았으면 한다. 고향은 관계이며, 그 관계가 모여 함께하는 삶이 공동체다.

그렇다면 원불교 공동체를 정의할 수 있는 관계는 어떠한 것이 있으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정의해야 한다. 원불교 공동체를 통해 일상을 살고 있는 타향살이에서 우리가 느끼고 싶고 가지고 싶은 고향의 따스함과 넉넉함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교단의 숱한 난제들과 교화의 어려움도 공동체로서의 원불교를 생각한다면 쉽게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교역자 역량강화, 교화구조개선 등등 시대 변화에 순응하지 못한 문제를 정의하기 이전에 고향을 대하는 마음처럼 우리가 함께 모여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원불교 공동체의 회복이 더 필요한 일이다. 숱한 관계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내가 아닌 우리의 관점으로 지금 이 자리를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멀리 있어 그리운 고향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 여기를' 항상 고향으로 인식하도록 나부터 바로잡는 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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