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상 작가]  마지막 날숨이 멎고, 브라흐마의 구멍을 빠져나온 프라나가 세파로 변하는 순간, 존재의 근원에서 투명한 빛이 나온다고 한다.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죽음의 진행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호흡이 멎었을 때 사자(死者)의 생명력(프라나)은 지혜가 머무는 생명 에너지 센터로 내려간다. 그리고 사자의 의식체(세파)는 자연 상태에서 최초의 투명한 빛을 체험할 것이다.…이때 사후세계가 순간적으로 밝아 오게 된다."

자연 상태란 '형태를 만드는 활동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부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은 마음이 육체에 담겨 있을 때를 말한다. 마음이 육체를 갖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는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물질이 작용하는 상대성의 세계가 아닌 물질의 작용에서 자유로운 절대성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는 살아 있을 때도 느낄 수 있는데, 깊은 명상이나 선(禪)의 경지에 완전히 들어간 상태에서 겨우 느낄 수 있다.

투명한 빛을 체험하는 것은 마음이 육체를 벗어날 때의 순간에서 찰나적으로 이뤄진다. 죽음이란 생의 종말이 아니고 또 다른 생의 시작이다. 현생에서 죽음이 실행되는 순간 육체에서 중음신으로, 상대의 공간에서 절대의 공간으로 순식간에 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소태산은 '죽음'을 '변화'로, 일종의 '이동'으로 본 것이다. "윤회하는 존재, 이것을 유(有)라고 한다. 그 존재의 탄생을 생유(生有)라고 하고, 죽음을 사유(死有)라고 한다. 누구나 탄생을 거쳐 죽음에 이르고 다시 환생을 한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했지만 아직 환생을 하기 전의 상태, 아직 새로운 육체를 갖지 않은 중간 상태를 중유(中有) 또는 중음이라 하고, 티벳어로 바르도(bardo)라고 한다."

"죽음의 과정은 탄생 과정의 역순이다. 생은 의식체(마음)가 몸을 갖는 것이고, 사는 의식체가 몸을 버리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둘 다 의식체가 새로운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바르도에 깨어나서 바르도 세계 자체의 독특한 환경에 익숙해져야 한다. 바르도 세계에서의 신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에테르(精氣) 상태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은 그가 생전에 갖고 있던 인간 육체의 정확한 복제품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바르도체(體)라고 한다." 바르도체는 곧 중음신이다.

바르도의 세계로 이동하는 순간 중음신은 투명한 빛을 체험한다. "모든 것은 구름 없는 텅 빈 하늘과 같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티없이 맑은 그대의 마음은 중심도 둘레도 없는 투명한 허공과 같다. 이 순간 그대는 그대 자신의 '참 나'를 알라." 투명한 빛은 죽음의 순간에 존재의 근원에서 나오는데 '다르마카야(法身)'라고 한다. 원불교에서는 다르마카야가 곧 법신불사은이다. 이 첫 번째 단계에서 중음신이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투명한 빛을 받아들이면 그는 법신불사은의 은혜에서 대자유를 얻는다.

만일 최초의 성주를 듣고 그 주문의 힘을 믿으면서 투명한 빛을 받아들였다면 그 중음신은 곧장 법신불사은에게로 직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99.99%의 중음신들은 최초의 성주를 듣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이제 그는 중음의 세계, 바르도의 세계를 여행해야만 한다.

[2017년 10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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