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대 노인의 몸으로 살아보는 생애체험에서 신청자들이 체험복을 입고 구불구불한 길을 가보고있다.
고령사회 진입, 달라진 노년을 위한 고령친화산업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 실버산업에 대한 관심과 참여 증가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 다양한 제품과 노인생활 체험


이른 가을이 시작되던 지난 8월말, 우리 사회는 조용히 거대한 분기점을 넘어버렸다. 바로 '고령사회'다. 국제연합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 중 14% 이상이면 고령사회인데, 2000년 7%이상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지 17년만에 고령사회가 된 것이다.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가는 것은 많은 국가들의 대체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속도가 문제다. '빨리빨리' 가 나이듦에도 적용된 것인지, 한국의 진입은 그 빠르기가 세계 최고다. 프랑스가 115년 걸렸고, 미국이 73년 걸렸으며, '노인의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마저 24년이 걸렸다.

가장 빨리 늙는 나라의 가장 부유한 노인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는 나라 한국. 그러나 그 속도에 비해 고령의 삶, 노인의 생활에 맞춘 다양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발전 속도는 늦은 감이 있다. 이제 고령사회를 넘어 10년 정도면 65세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하니 급하게 고삐를 쥐는 상황이다.

더구나 현재의 '고령자'는 예전의 '노인'과는 다르다. 건강한 신체 덕분에, 1955년~1963년생인 베이비붐세대의 기대수명은 남 77.9세 여 84.6세, 건강수명도 남 65.2세 여 66.7세다. 전무후무한 높은 경제력도 특징이다. 2015년, 연령대별 월평균 카드 사용액은 50~60대가 177만원으로, 30대 124만원, 40대 136만원을 가뿐히 넘았다.

'역사상 가장 부유한 노인'인 현재의 고령자들은 자산 역시 많고, 자신에 대한 투자에도 아낌이 없다. 정신·육체적인 노화에도 대한 적극적인 대처도 특징이다. 복지시설도 이용하고, 보조기구도 구입하며 적극적으로 여유롭고 즐거운 노년을 영위한다.

이러한 특징의 소위 '실버큰손'들이 새로운 소비자들로 떠오르다 보니, 고령친화산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기대 이상이다. 고령친화산업의 시장 규모는 2010년 33조 2241억원에서 2015년 67조 9821억원으로 두 배 정도 증가했고, 3년 뒤인 2020년에는 125조에 육박할 예정이다. 이처럼 높은 시장가능성 덕에, 고령친화산업은 점점 위축되고 어려워지는 시장들 중 몇 안되는 블루오션으로 손꼽히고 있다.

▲ 힘없는 손을 위한 고정형 식기구나 미끄러지지 않는 컵 등으로 꾸며진 식탁.
▲ 고령친화제품 중 침대 및 리프트는 고령자가 있는 가정에서 많이 찾는다.

고령자 이해와 존중 위한 80대 삶 체험

고령사회 진입은 단지 특정 세대의 증가가 아닌, 사회 전체의 변화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다양한 시설 및 프로그램들도 생기고 있다. 전국의 고령친화 관련 시설 중에서도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은 그 규모와 수준이 손에 꼽힌다. 2008년 임시 개관부터 10년 역사에 이르는 이 곳은 특히 1천종을 훨씬 넘는 전시와 생애·치매체험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체험들은 무료지만, 인원이 빨리 마감되기 때문에 일찌감치 신청 후 기다려야 한다.

전시 제품들은 일상생활, 배설, 기거, 욕창방지, 이동 등의 분야에서 각각 수백가지에 이른다. 손을 떨거나 힘이 없는 어르신을 위한 굽은 포크나 무거운 숟가락, 혀로 건더기를 밀어내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한 분리형 음료컵, 나무판에 돋보기와 함께 고정되어 있어 혼자 할 수있는 손발톱깎기 등 일상의 사소한 불편을 해소하는 기발한 생각들이 빼곡하다. 한쪽으로 음식이 모이게 하는 기울어진 모양의 접시, 상하로 이동하는 싱크대와 주방선반, 문턱이나 바닥에 걸리지 않도록 앞이 떠있는 신발 등도 어르신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더한 불편을 위한 제품도 있다. 발목이 아래로 쳐지는 족하수증을 완화하는 보조기나 계속 앉아있어야 하는 어르신을 위한 통풍 보온 방석, 귀에 갖다대는 소리증폭기, 늘 누워있을 때 유용한 욕창방지 자세변환기 등이며, 보호복이나 손보호장갑 등 치매환자들을 위한 코너도 따로 있다.

많은 제품군을 보유한 코너는 이동용품으로 지팡이나 보행기를 비롯, 휠체어, 복지차량, 보행차, 보행보조용품 등 거동 정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여가, 훈련용품으로는 간단한 퍼즐부터 즉각적인 반응력을 키우는 게임, 손의 감각을 자극하는 놀이 등도 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제품들을 한데 모아 집처럼 꾸민 테크노하우스에서는, 고령이거나 일부가 불편한 당사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노인의 삶, 무거운 몸과 떨어지는 감각들

이곳에서 가장 많이 하는 프로그램은 생애체험으로 노인유사체험 복장을 입은 채 다양한 일상에 도전해본다. 고령자의 일상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을 삶의 여러 영역에서 경험함으로써, 어르신을 더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교육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조끼와 양손과 양발의 모래주머니, 관절억제대를 착용한 순간 불편함과 답답함이 밀려오는데, 한 시간여 계속되는 체험 마지막에는 대부분 녹초가 된다.

제공받는 두 개의 안경은 각각 백내장 안경과 녹내장 안경으로, 뿌옇게 보이는 백내장 안경과 작은 원으로만 보이는 녹내장 안경을 번갈아 끼면서 감성, 평형, 주거공간 등에서 체험을 수행한다. 그림과 같은 조각 찾기나 색깔별로 구슬 끼우기 등 쉬운 놀이도 80대 노인의 시력과 무거운 손으로는 금세 지친다. 굴곡있는 길을 가보는 평형체험에서는 절로 기우뚱하는데, 평평하지 않은 바닥이 어르신들에게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 느낄 수 있다. 주거공간에서는 실제 노인의 삶을 잠시 엿보며 이해할 수 있다. 침대에 눕기, 변기에 앉기, 소파에서 일어나기는 물론,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음식 먹기 등 어느 하나 쉽지 않다.

마지막 슬로프에서는 경사와 돌바닥, 과속방지턱 등의 환경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보는 체험이 진행된다. 두 명씩 짝을 지어 휠체어를 직접 운행해보기도 하고 보호자가 되어 밀어보기도 한다. 평소에는 별 것 아니게 느껴지는 작은 장애물들이 고령 어르신들에게는 어려움일 수 있음을 아는 소중한 앎을 제공하고 있다.

▲ 백내장 안경을 쓴 채 감각퍼즐로 불편을 체험한다.
고령사회 2달, 고령친화교화 생각할 때

고령사회는 생각보다 빠르고 깊게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시는 나이 들어도 편하게 살 수 있는 '고령친화마을'을 조성하겠다며 3개의 시범지역을 발표했다. 제일 먼저 '어르신 친화 상점' 만들겠다며, 118개 상점 시설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가게 문턱을 없애고 글씨를 크게 바꾸는 한편, 곳곳에 돋보기와 지팡이 거치대를 비치할 예정이다. 흥미롭게도, 3개 지역으로 선정된 동작구 성대시장은 신림교당에서 2.1㎞, 은평구 신응암시장은 은평교당에서 1.2㎞, 종로구 락희·송해거리 시작점 낙원상가와 종로교당은 100m 거리다.

사실 종교야말로 가장 고령친화적인 존재일 수 있다. 지난해 인천시는 주목할만한 통계를 발표했다. 노인 복지 및 편의시설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 곳이 종교시설(9.4)로, 관공서(8.8), 운동시설(8.7), 공원(8.6), 경로당·노인복지관(8.5) 등을 월등히 앞선 것이다. 교화는 물론, 교단의 존재 의미와 사회적 역할 역시 현실과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고령사회로 진입한지 두달, 지금이야말로 교화에 있어서도 고령친화교화를 떠올리는 시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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