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뜻이다.

얼마 전 아침에 사무실 문을 여는데 한 교도가 2층 법당에서 내려온다. 아침 일찍 무슨 일이냐고 묻자 오늘 좋지 못한 일이 있어서 마음이 심란해 교당에 서 기도와 법문사경을 하고 간다고 한다. 좋지 못한 일이라고 하니 걱정이 되어서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물었다. 그 교도는 있었던 이야기를 다 하고 기도라도 해야 마음이 안정될 것 같다며 내일도 오겠다고 했다.

언제든지 오셔서 기도하시라고 하고 배웅을 하는데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이렇게 말을 하고 나니 다 해결이 된 것 같다'며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하고는 밝은 얼굴로 가셨다.

돌아서서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고개가 갸우뚱하다. '나는 뭐 한 것이 없는데 뭐가 해결이 됐다는 거지?' 내가 대안을 마련해 준 것도 없고, 기도를 함께 하지도 않았고, 교도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 밖에 없는데 해결이 되었다고 하니 실로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도 경청의 힘이 작동한 듯하다.

나는 평소 성격이 급한 탓에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일이 참 어렵다. 조금 듣다 보면 바로 내 생각이 입으로 나오고, 상대가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이야기할 때면 그냥 들어주기보다 해결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다 듣기도 전에 내 생각을 얘기해서 마무리 지으려 하는 성향이 있다. 더러 그렇게 해결 방안을 얻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대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사실 해결방안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공감해줄 상대가 필요한 것이다.

가끔 추천교무님을 뵐 때면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그냥 좀 들어줘~"이다. 중간에 말을 끊거나 내 생각을 말하려고 하면 그냥 가만히 들어달라고 하신다. 경청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힘든 수행과도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요즘 같이 언어가 발달하고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일은 꼭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우리 속담에 말하고 다니는 것을 나팔 불고 다닌다고도 하나니, 사람사람이 다 나팔이 있어 그 나팔을 불되 어떤 곡조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어떤 곡조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며, 어떤 곡조는 슬프게 하고, 어떤 곡조는 즐겁게 하며, 어떤 곡조는 화합하게 하고, 어떤 곡조는 다투게 하여, 그에 따라 죄와 복의 길이 나누게 되나니라. 그런즉, 그대들은 모든 경계를 당하여 나팔을 불 때에, 항상 좋은 곡조로 천만 사람이 다 화하게 하며, 자기 일이나 공중의 일이 흥하게는 할지언정 서로 다투게 하고 망하게는 하지 않도록 하라. (후략)"(〈대종경〉 인도품 21장)

말을 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말을 들어주는 일은 쉽지 않다. 항상 좋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 잘 들어야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들을 건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말을 하는 이도 말을 듣는 이도 서로 마음이 통하여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청득심, 오늘부터 마음에 잘 새겨두어야겠다.

/광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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