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도언 교도/해운대교당
육도 중 어느 세계로 가느냐는 스스로 선택
쌓은 선업의 정도가 진·강급으로 나뉘어
마음공부는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가는 사다리

상제(喪制)가 눈이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채 내 옆에 앉으면서 "윤회는 정말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제 경남 의령 산골의 나지막한 선산에 부친의 장사(葬事)를 치르고 귀가하는 영구차 안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한편으론 반가웠고, 다른 한편으론 당황스러웠다. 살가운 40년 지기(知己)지만 한 번도 윤회를 긍정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삶은 그것으로 끝난다는 신념을 굳게 지니고 있던 단멸론자였다. 육체가 허물어지면 흙으로 돌아갈 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사람은 죽어도 자기 업(業)만은 반드시 짊어지고 사후세계를 간다는 이야기를 하면 늘 콧방귀 날리던 지독한 현생찬미론자였다. 사람은 한번가면 끝이라는 게 변함없는 그의 믿음이었다.

만물은 생노병사로 윤회하고,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돌고 돈다는 해설에도 귀를 닫았었다. 사람은 마음공부에 따라 진급으로, 강급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설법에도 고개 한번 끄덕인 적이 없었다. 이랬던 이가 진지한 얼굴로 윤회에 대한 관심을 먼저 내보였으니 내가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았다. 영혼은 영원하다는 상주론자든,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끝난다는 단멸론자든 죽음에 대한 관심의 크기는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한 번 확인하는 기쁨의 순간이기도 했다.

사람은 죽으면 중음세계로 가서 사십구일을 보낸 후 육도세계로 넘어간다. 천계 인간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 중 어느 계를 선택할 지는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쌓은 선업 정도에 따라 스스로 결정한다고 한다. 선택은 천칭저울을 재듯 정확하게 진행된다. 재보시, 무외보시, 법보시로 채워지는 선업을 얼마큼 쌓았는가는 자신이 잘 알고 또 중음세계에선 부정직의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천체물리학자 마틴 리스는 "무한한 우주가 존재하고, 이들 우주는 독특한 특성과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어떤 우주에 사느냐의 선택은 내가 옷가게에서 내게 맞는 옷을 고르는 것에 비유된다"고 말했다. 선택은 자신의 성품 밝기 정도에 따라 결정되고 진급 혹은 강급의 운명으로 이어진다.

서울은 국제사회에서 문화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다섯궁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 유례없는 궁궐도시의 모습이다. 그런데 다섯궁궐이 서울의 가치를 높게 하는 데는 조선시대 왕들의 신주를 모신 종묘가 있어서다.

종묘가 다섯궁궐의 퀄리티를 상향시켜서 서울을 세계 최대의 궁궐도시로 칭송받게 한다. 현존이 사후세계를 숭고하고 엄숙하게 만들고, 사후세계가 현존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생사는 이같이 맞물려 받들면서 상대편의 가치를 업그레이드시킨다.

"20억년전 인간은 눈도 없는 미생물로 그 모습을 시작했다. 5억년전 물고기였다가, 1억년전 바다에서 뭍으로 나와 쥐 같은 종이 되었고, 1천년전 류인원, 100만년전 원인(猿人)으로 섰다"고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주장했다. 인간이 강급하면 사기꾼, 노름꾼, 약탈자, 협잡꾼으로 태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미생물, 쥐로 강급된 모습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다. 오래 전 인간의 모습은 미생물이었고 쥐였지 않는가.

생명이 다한 육신은 우주 속의 원소로 흩어져 다른 곳에서 새 생명 탄생에 사용된다. 이 원소들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 일부로 재활용된다. 지금도 137억년전에 일어났던 빅뱅의 잔재가 우주에서 무수히 날아오고 있다.

마음공부 많이 하는 사람에겐 진급한 영혼의 원소가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고, 그 반대 현상이 전개될 것이라는 것도 명약관화하다. 마음공부는 광대무량한 낙원을 가기위한 사다리다. 사다리를 높이 만들수록 높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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