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간사시절에 써놓은 공부담을 발견했다. 어느 덧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마음이 궁금해 다시 읽어봤다. 행복이라는 주제로 쓴 글에는 내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적혀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가장 행복할 때가 밤에 한참 꿀잠을 자다가 새벽 좌선시간인 줄 알고 눈을 떴는데 아직 2-3시경 밖에 안 되었을 때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잠은 왜 자도 자도 부족한 건지 여전히 공감이 되기도 하고 행복이 참 단순하기도 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학부시절에 집에만 가면 온 종일 잠만 자다 간다고 어머니께서 잠귀신이 붙었냐고 놀리기도 했다. 친한 동기교무가 잠이 부족하다고 하면 우스갯소리로 죽으면 평생 잘 것을 깨어나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하루 중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묻는다면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두 다리 쭉 뻗고 누워서 잠들기 전일 것이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럴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침이면 깨어나기 싫어 전쟁을 치르는가 보다. 그런 잠이라는 것을 대종사는 생사와 연관하여 설명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떳다 감았다 하는 것과도 같고, 숨을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것과도 같나니, 그 조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치는 같은 바로서 생사가 원래 둘이 아니요 생멸이 원래 없는지라,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로 알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이를 생사라 하나니라."(〈대종경〉 천도품 8장)

사람이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기는커녕 두렵고 무섭다. 나 역시 아직까지도 죽음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잠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새로운 내일이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이 없다면 기분 좋게 잠들지 못하고 가는 오늘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하지 않을까? 생사 또한 생멸이 아닌 변화라는 이치를 정확히 깨친다면 죽음이 결코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일은 뭐하지? 하는 생각과 함께 수고한 오늘을 다독이며 미소를 머금고 잠을 청하듯 죽음 또한 ‘다음 생에는 어떤 삶을 살까?’라며 열심히 산 이번 생에 감사의 기쁨이 솟는다면 죽음은 참 희망적일 것 같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잠이 드는지가 중요하다. 허송하게 보내고 생각없이 잠드는 것보다 보람되고 의미있게 하루를 보낸 후 내일을 계획하고 잠이 들면 더 편안한 단잠에 들지 않을까…. 대종사가 우리에게 내어준 교법을 잘 실천해서 만족한 삶을 살고 다음 생의 준비까지도 잘 마치면 희망적인 죽음을 맞이하리라 믿는다.

나는 가끔 잠들기 전, '신은경'으로 사는 처음이자 마지막 생에 다시 못 올 오늘을 감사히 기쁘게 살았는지, 내일은 어떻게 하루를 맞이할지 기도하곤 한다. 그러면 잠들 때 마음이 좀 더 편안하고 좋다. 내일이 없다면 오늘에 집착하며 살 것이다. 새벽 2-3시, 아직 더 잘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한 것처럼 내가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앞으로 더 있음에 행복을 느끼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광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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