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인 전남 구례의 고등학교 재학 중, 당시 1학년 같은 반이었던 정인성 교무(현재 문화사회부장)의 연원으로 원불교를 처음 알게 되어 학생시절에는 구례교당을 줄곧 다녔다. 당시 교당에서는 교도회장님이 한자도 가르쳐주시고, 교무님이 교리 공부도 열심히 지도해 주셔서 많은 학생들이 교당에 다니는 것을 참 즐거워했고 좋아했다. 당시 스승님(만타원 정도중 교무님)께서는 정법에 대한 확실한 가르침을 주셔서 많은 학생들이 전무출신 서원을 세우고 다지는 계기가 됐다.

나는 일찍이 공직에 뜻을 두어, 1977년부터 고용노동부에서 35년간 공직생활을 했으나, 기간제 전무출신을 지원하기 위해 정년 3년을 앞두고 4년 전 8월에 명예퇴직을 했다. 그동안은 국민에 대한 서비스와 회사가 사업을 잘하고 법을 잘 지키는지를 점검하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해 왔다. 공직을 수행하면서도 마음을 비우고 공변된 마음으로 자리이타로 사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행복의 지름길이 아닌가 싶어 그렇게 살려면 제일 근본이 되는 마음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나부터 정말 잘 해야겠다고 다짐한 터였다.

원기98년 1월경, 〈원불교신문〉에 기간제 전무출신제도에 관한 내용이 게재되었다. 왠지 관심이 있었고 마음이 끌려서 두세 번 읽어보고 나니 앞으로 여생에 이 길이 나에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 5월, 기간제 전무출신제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려고 중앙총부(교육부)에 전화로 문의를 했더니 10월경에 선발공고를 하고 원기98년 내에 선발을 완료한 후 이듬해 2월부터 1년간의 교육을 실시한다고 하기에, 나는 12월말까지 공직생활을 잘 마무리한 후 전무출신 지원을 해보겠다는 나름의 계획을 세우게 됐다.

그런데 갑자기 원기98년 7월에,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6개월이나 빨리 기간제 전무출신 선발 공고가 신문에 게재 됐다. 보고 나서 그동안 지내온 공직생활 등 인생을 반조해 보았다. 이왕지사 전무출신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두 마음 없이 조금이라도 젊을 때에 지원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 7월15일에 전무출신 지원을 결정하고 이틀 후에 직장에 명예퇴직원을 제출했다.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전무출신을 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길이 가장 소중한 길이며 전무출신을 하는 것은 세상을 살리는 일이고 대종사께도 보은하는 길이라 생각이 들었다. 8년 전쯤을 거슬러 생각해 보니 당시 다니던 부평교당 교도회장단이 새롭게 바뀌면서 총부에 계신 경산종법사님께 인사드리러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종법사님께서는 나에게 "원무 한 번 해봐라" 하고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당시 원무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터라 일단은 "예" 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 기간제 전무출신을 지원하게 된 동기를 곰곰이 짚어보니 은연중에 종법사님 말씀이 나의 뇌리에 잠재해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서정민)에게는 평소에 "앞으로 기간제 전무출신을 해 보겠다"는 뜻을 전하기는 했지만, 막상 전무출신 지원을 하겠다고 하니 약간의 반대가 있었다. 그래서 평소 마음속에 더욱 새기면서 기원했다. 상생선연, 자리이타, 무아봉공의 공부심으로 기원하고 염원하면 서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다. 그 후 아내도 나의 뜻을 공감해 주며 "이왕 전무출신 하겠다고 마음먹은 거니 잘해 봐요"라며 힘이 되어 줬다.

원기98년 8월29일, 기간제 전무출신 공부를 하기 위해 영산선학대학교에 처음 가는 날 부평교당 송타원 이은영 교무님과 교도님이 나를 영산에 데려다 주었다. 당시 영산선학대학교 입구에서 헤어질 때 공부 열심히 해서 참다운 교무가 되라는 교무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돌아 마음을 찡하게 한다.

/모스크바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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