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연으로 하나 된 가족, 내실 있는 교화 성장"

▲ 이영전 교무를 중심으로 교도간 신뢰를 다지며 내실있는 교화단 조직이 돋보이는 아중교당은 숙원사업이었던 교당주변 부지를 매입, 제2의 도약을 하고 있다.
아중교당으로 향하는 길, 단풍 물들은 나무들이 제각각 곱다. 꽃만큼 아름다운 단풍잎이 바람에 날리고, 마음도 나뭇잎 따라 기분 좋게 흔들린다. 아담하게 자리한 교당, 법당 너머로 교도들의 합독 소리가 들린다. 일요법회시간, 교도들은 '개교의 동기'를 합독하며 마음을 챙긴다. 그 마음은 독경으로 이어지며 오롯한 일심이 된다.

설교 시작 전, 이영전 교무는 한 주간 있었던 교단·교구 일정을 교도들과 공유한다. 강원교구청 봉불식이 현장 느낌 그대로 전해지고, 전주·서전주지구 문화기행에서 느낀 주임교무의 감상담도 담박하다.

설교 주제는 '부모은.' 첫 교무 발령을 받았던 시기, 간난한 교당살림을 보고 모친이 쌀 한가마니를 보내온 이 교무의 사연이 진솔하게 전해진다. '가마니를 묶지 않고 조금이라도 쌀을 더 채워 보내기 위해 가마니 입구를 한 땀 한 땀 바늘로 꿰매' 보낸 부모의 마음. 세련된 어조가 아니어도, 이 교무의 설교는 교도들의 마음을 찡하게 울린다. 사은으로 밝혀준 대종사의 '부모은', 곧 부모 보은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교도들은 온전하게 깨닫는다.
창립주 삼타원 김삼선화

아중교당은 원기81년(1996) 3월, 창립주 삼타원 김삼선화 교도의 원력으로 신축기공, 그해 12월 건평 380㎡을 신축완공한다. 아중개척교당 주임교무로 박공원 교무가 부임하고, 원기82년 봉불식을 진행한다.

창립주 김삼선화 교도의 공덕은 아중교당 교도들의 신앙 주춧돌이 된다. 창립요인 노현명 교도가 창립주를 회상한다. "삼타원님은 금암동 부자셨어요. 그 많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부들 새참을 직접 장만했지요. 새참 광주리를 매일 머리에 이고 다니시니, 정수리 쪽 머리카락이 다 빠질 정도였다고 해요. 그렇게 근검절약하면서 모은 재산을 불사하신거죠."

김삼선화 교도는 사고로 잃은 아들의 해탈천도를 위해 불사의 공덕을 쌓고, 현 교당 부지와 1층 법당을 지을 헌공금을 희사했다. 이 희사금이 종잣돈이 됐고, 큰 딸 최진영 교도를 비롯해 창립요인들의 헌신적인 공심이 더해져 교당 봉불에 이른다.

"연원인 금암교당에서 일곱가족이 아중교당으로 왔어요. 그때는 아중리 쪽은 택시도 가지 않을 만큼 열악한 곳이었죠. 초대 박공원 교무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저희 창립요인들은 삼타원님의 공덕을 잊을 수가 없어요." 김삼선화 교도의 정신을 잊지 않을까, 늘 염려하는 마음으로 교당 일에 임해왔던 창립요인 이경선 교도. 그는 "이제는 교당 일을 후진들에게 넘겨줘도 되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창립주의 공심을 이어갈 만큼, 아중교당 젊은 교도들의 신심 또한 튼실하게 자리매김 됐다는 이야기다.

법연으로 하나 된 가족

원기89년 1월, 2대 교무로 부임한 이영전 교무. 당시 평균 법회출석 교도 수는 30여 명이었다. 이 교무는 부임 후 '해야 했던 교당 숙제가 있었다'며 웃음을 건넸다. "교당 건축기금 중 대출 빚이 조금 남아 있었고, 개척교화를 위해 교당 앞터를 매입하는 게 교도들의 공동 염원이었어요. 알뜰살뜰한 교도님들 합력으로, 부임 한 그해 5월에 대출 빚은 다 갚게 됐죠." 간고한 교당 생활이었지만, 일심 서원으로 흔들림 없이 개척교화에 임해왔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부임 4년 째, 이 교무에게 육체적으로 큰 시련이 찾아왔다.

"원기93년 임파선 수술을 해야 했어요. 그리고 1년 뒤, 방광과 콩팥을 떼어내는 2차 수술을 하고, 그해 대장암 수술까지 했으니 고생을 좀 했죠." 시련은 그게 끝이 아니었고, 이후 두 번의 수술을 더 겪어내야 했다. 말로 다하지 못할 큰 시련을, 반면 담담하게 전하는 이 교무. 그의 견고한 심법이 읽혀진다.

교도회장을 역임한 이경봉 교도는 그 때의 기억이 아련하게 가슴 한 켠에 남아있다. "교무님이 첫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셨는데, 요양을 안 하고 교당에 계시겠다고 하셔요. 교도들과 상의를 하고, 7명이 요일별로 당번을 정해서 교당에서 매일 교무님 병간호를 했어요. 이후 여러 번 수술을 하고 입원해 계시는 동안, 교당에서 매일 정전봉독하고 108배 절 수행을 하면서 교무님 건강을 기도드렸어요."

'교무님과 교당을 지켜냈다'는 표현이 전혀 과언이 아닐 만큼, 교도들은 그렇게 2년 여의 시간을 함께하며 시련을 극복했다. 그때도, 지금도, 아중교당 교도들은 변함없는 '일원 가족'이다.
▲ 10월29일 진행된 가을 단풍법회에서 아중교당 교도부부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아중교당의 힘 '인화'

아중교당은 교도회장 이정락 교도, 부회장 유공성·이광수·이경선·송경묵 교도, 전 교도회장 이경봉 교도, 봉공회장 서성연 교도, 여성회장 조여옥 교도, 청운회장 소재동 교도의 임원진과 창립요인 노현명·전은진·전우형 교도를 중심으로 12단의 교화단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 평균 법회출석 교도 수는 60여 명. 교도 상호간 신뢰를 바탕으로 내실있는 교화단 조직이 단연 돋보이는 교당이다. 올해 1월 교도회장을 맡게된 이정락 교도회장은 "올해 교무님 퇴임 기념으로 남자1단(원로단)이 가을 단풍법회를 제안했다"며 10월29일 야외법회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앞서 12단 막내 여성단은 8월 휴가법회 겸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직장인으로 구성된 12단 단원들이 각자 자신의 휴가일정을 조정해, 이영전 교무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동유럽 동행 여행을 선물한 것이다.

한자리에 모인 교도들의 교당 자랑은 끝이 없다. 귀농 차 진안에서 살고 있는 노현명 교도,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 주도 빠짐없이 진안에서 달려오는 그는 "늦게 들어오는 교도까지 일일이 맞이해주는 회장님을 뵈면 마음이 더 챙겨진다. 교도들을 살뜰히 챙겨주는 선배님들이 앞에서 끌어주는 힘이 크다"고 마음을 내보인다.

이내 전은진 교도가 말을 잇는다. 그는 "이경선 부회장은 초창기 교당 봉공회장으로 10여 년 동안 교당 살림을 이끌어왔다. 교당의 사무적인 일까지 척척 처리해주고, 부교무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보이지않는 곳까지 부회장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며 선배 자랑을 내놓고 한다. 정작 당사자인 이경선 부회장, 그 또한 타지로 이사해 매주 교당에 나오려면 대중교통을 3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2시간이 족히 걸리는 시간이지만, 그는 법회시작 10분 전에 항상 도착한다. 일요법회 뿐 아니라 교당의 대소사에도 빠져본 일이 없다.

조여옥 여성회장은 교화단 활동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아중교당은 매월 2째 주, 합동으로 단 법회를 본다. 합동법회 후에는 단모임을 통해 각자 공부담을 이야기하며 회화를 나눈다. 한 주간 실천했던 유무념 사례를 서로 공유하고, 교전공부, 마음공부에 분발심을 내도록 서로를 격려한다. 단원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화'라는 게 한 목소리다.

아중교당은 숙원 사업이었던 교당 주변 부지를 매입하고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일 년을 하루 같은 마음으로 14년을 살아왔다. 퇴직 후에 몸이 좀 좋아지면 교단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다" 올해 출가교화단 총단회에서 활불상을 수상한 이영전 교무의 소박한 바람이다. 법연으로 하나된 가족, 아중교당 교도들과의 만남이, 이 가을 오래도록 짙은 여운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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