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이 붓이, 큰 일은 크게
아닌 일은 아니게 쓰게 하시고
쓸 일은 쓰게
안 쓸 일은 아니 쓰게 하여 주시며
이 붓으로 큰 일이 줄어지거나
아닌 일이 과장되지 말게 하시고
우래 만대에
공명한 기록으로 남게 하소서.


말이 많으나, 공사 본디 그런 것
사필(史筆) 본디 시비 위에 유인(遊刃)하는 것
공변된 뜻들
무딘 붓에 약이 되게 하여 주소서.


범산 이공전(1927~2013) 종사
출처 〈원광〉 86호 수록(1975년 7월)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한다. 범산 종사는 교단 초기 정산종사를 보필하여 〈정전〉 편찬 조력 및 원불교교서 편수에 참여했다. 〈원불교 교전〉 등 7대 교서를 완정하는 주역으로 활약한 주역이었다. 이 시를 음미하면 그의 고뇌가 느껴진다. 사실적이고 진실에 바탕한 기록만을 하겠다는 다짐이 읽혀진다. 교단 내 언론기관에 근무하면서도 이 마음가짐은 유효했으리라.

이정재 문학박사는 "교단사에 관한 범산종사의 많은 기록이 얼마나 깊은 고민과 정신적 밀도에 의해 진행되었나를 가늠케 한다"고 평했다.

IT의 일상화로 '펜의 힘' 보다 더 강력한 도구가 많이 등장했다. 언론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 힘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시대다. 대종사께서는 "말 한 번 하고 글 한 줄 써 가지고도 남에게 희망과 안정을 준다"고 하셨다. 오늘 나는 이 붓끝으로 어떤 진실과 희망을 건져 올렸나?

/둔산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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