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철 교무/군산교당
'성직' 프레임에 갇힌 허울 좋은 '신성' 강요
인재발굴·양성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상황

전무출신의 도 다섯 번째에 '성직(聖職)은 누가 맡긴 직이 아니요, 스스로 맡은 천직(天職)인 동시에 대도의 주인이요, 하늘마음을 대행하는 천지의 주인이니라'라는 조항이 있다.

매일 아침 전무출신의 도를 암송하며 나의 존재 이유를 자각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며,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며 자아를 실현하고 생계 수단을 마련해 삶을 유지해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이다. 그 수많은 직업 가운데 원불교 성직자의 길을 선택한 우리들은 전무출신을 직업이라 부르지 않고 '천직'이라 부르며 스스로 남다른 사명감에 가슴 벅차하고 동료와 선·후진을 독려하곤 한다.

오래 전, 내가 원불교학과에 입학하던 시절에는 한 학년의 정원이 50명을 넘어섰고 그 이후 70명에 이르던 시절도 있었다. 학부 시절을 보내며 젊은 혈기로 세속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성직은 천직'이라는 전무출신의 도를 외우고 또 되뇌며 내가 선택한 천직, 전무출신의 길을 오롯이 걸어가기 위해 몸부림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중년에 이른 지금 나를 비롯한 내 또래의 전무출신들은 과연 천직으로서 성직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순간순간 얼마나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반문해 본다.

성직자는 교육·교화·자선의 삼방면을 근간으로 운영해 가는 교단의 조직 행태 속에서 살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야별 구성원들의 삶의 질은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런 현실 앞에서 천직이라 생각했던 성직의 삶은 흐릿해 지고 생활인으로 전락해 버리는 우리들의 초라한 일상이 결국 교화정체라고 하는 성적표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무출신 지원자가 급감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여성 지원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인재부족 사태가 야기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교단 현실이다. 한때는 한 학년의 정원이 50~60명에 이르던 전무출신 지원자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이유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교단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같은 20대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고급 아파트에 값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겨우 몸 하나 의탁할 수 있는 고시촌에서 불투명한 내일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들에게 나의 설교는 한낮 듣기 좋은 넋두리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자괴감이 내 전신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 들어왔다.

돈이 인격이 되는 천민 자본주의 시스템에 갇혀버린 그들에게,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관행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성직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전무출신의 어쭙잖은 설교는 한낱 뜬구름 잡는 소리요, 봄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한때의 꽃향기일 뿐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은 변해 가는데 과거 '성직'의 프레임에 갇혀 허울 좋은 '신성'만 강요한다면 우리의 뒤를 따라 전무출신의 길을 함께 걸어갈 도반 찾기는 점점 어렵게 된다. 교단의 새로운 100년을 책임질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상황임을 직시해야 한다.

조계종 35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설정 스님이 취임사에서 '마부정제(馬不停蹄)'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했다. "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며 풀어 말하면 "지난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발전하고 정진하자"는 의미이다. 조계종단도 오랜 역사를 통해 많은 문제점이 누적돼 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여기에 고언을 하나 더한다. "교단은 달리는 말과 같아서 멈추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장수가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고 칼을 휘둘러 적군을 물리치듯 교화·교육·자선 삼방면의 사업들이 진행되는 가운데에서도 문제의 심각성과 해결의 순서를 찾아야 한다. 교단의 구성원들이 '성직은 천직'이라는 가슴 벅찬 사명감으로 살아갈 때, 교화 돌파구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소태산 대종사의 일원대도가 세계만방에 가득한 원불교 2세기를 마주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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