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불교환경연대 탈핵순례는 녹색의 가치를 확산하는 꾸준한 실천이다.
녹색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사은이자 생명 상징해
환경적 가치…사회운동을 넘어 정치 영역까지 확대시켜야

지난 10월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결과 발표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공약하였으나 공정률, 매몰 비용, 지역경제 등을 고려한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공론화위원회를 통한 국민 의견 조사를 진행했다. 시민참여단의 의견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59.5%, 중단 40.5%였다. 원자력 발전은 축소 53.2%, 유지 35.5%, 확대 9.7%였다. 신고리 5.6호기는 건설 재개 권고가 나왔지만 원자력 발전 축소 의견이 53.2%였다. 공론화 결과 녹색/생태운동(이하'녹색')은 어떻게 해야 할까?

녹색은 불법이자 사은, 보은의 실천

녹색은 성장의 비용과 비용을 정의롭게 부담하는 문제를 제기해왔다. 우리가 추구하는 '발전'은 생태계를 보존하면서도 에너지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다. 지구적 문제를 함께 연대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지향한다. 녹색은 불법(佛法)과도 가깝다. 인간과 자연, 생명과 우주의 관계를 살피는 연기론은 생태적이며,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인 원불교 교법 사은(四恩)이 담겨 있다. '사은 보은(四恩 報恩)'은 녹색실천이다. 녹색은 산업사회 이후 인간 문명에 날카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발전과 이윤의 논리가 놓쳤던 점을 비추고, 기존 발전 방식을 지지하는 이들도 피하기 어려운,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발전과 성장에 있어 에너지는 필수 요소다. 발전과 성장은 어디까지 확대 돼야 할까? 필요와 욕심의 경계는 어디며, 적정 규모 에너지는 어느 정도인가?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은 인류가 감당할 수 있는 발전 양식인가? 핵발전 시작 이후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사용후 핵폐기물, 특정 지역의 희생을 통한 시스템은 소수의 목소리였다.

'탈핵'은 한국 사회 '주변부적 갈등'이었다. 한국 탈핵 운동의 시작은 1980년대까지 올라가지만, '중심부적 갈등'으로의 전환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이다. 권력이 강한 집단은 갈등의 '국지화.사유화.사적 해결'을, 약한 집단은 갈등의 '전국화.공공화.공적 해결'을 선호한다. 재벌 총수가 깡패를 고용해서 아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주적인 공권력을 우회한 갈등의 '사적 해결'이다. 보수정치는 다수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갈등을 정치의 언어로 삼는다. 진보정치는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갈등을 중요한 갈등으로 드러낸다. '주변부적 갈등'은 저절로 '중심부적 갈등'이 될 수 없다. '누군가들'의 오랜 노력으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원전 축소 53.2%는 오랜 '정치'의 결과이다. 소수의 탈핵운동은 갈등의 '전국화.공공화'를 이끌어냈다.
▲ 녹색당은 일상적인 정치활동으로 녹색의 가치를 알려왔다.
원전 축소 53.2%, 오랜 탈핵운동의 결과

민주주의는 한 판 승부가 아니다. 항상 승패가 명확하지 않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찬성하지만 탈원전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면서 원전을 어떻게 축소할 것인가? 지금 가동 중인 원전들은 어떻게 중단할 것인가? 공론화 결과로 당장의 대안을 도출하기 어렵다. 오히려 더 많은 정치가 필요하다. 나를 비롯한 건설 중단을 바라는 이들에게 공사 재개는 힘든 소식일테지만 핵발전소 발전을 지향하는 이들, 특히 핵산업계는 원전 축소 여론을 고심했을 것이다. 원전 확대는 불과 9.7%였다. 박정희 정권 이후 한국 정부는 핵발전 확대를 기조로 삼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그렇다. 공론화 결과는 결코 탈핵운동의 패배가 아니다.

한편 공론화위원회 결과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다양한 민주적 절차 중에 현 정부가 선택한 한 가지 방식이다. 최선이 아닌, 하나의 절차로 봐야 한다. 결과 또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원전 축소가 함께 나왔다.

두 가지를 전제해도, 수많은 실천 계획이 나온다. 추첨된 시민들이 숙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숙의 민주주의'는, 정교한 준비가 되지 않으면 기존 사회의 지배적인 논리를 따르기 쉽다. 기존 의회 체계에서 다양한 정치가 대변되고(약자들의 조직화), 대화와 타협의 정치과정으로 갈등을 풀어간다면 '숙의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공론화위원회'를 반복하는 것보다 기존 정치제도를 개선하고 민심이 그대로 반영되게끔 하는 것이 먼저다.

현 정부는 보수 시민들도 용납할 수 없는 '절차적 민주주의' 훼손의 반작용으로 집권했다. 공약 파기를 사과하는 것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준수하는 것이다. 부득이하게 공약을 못 지킨다면 최소한 해명과 사과는 해야 한다. 공론화위원회를 극찬하며 시민의 승리 운운하기 전에 말이다. 반면 현 정부는 녹색을 정치 기반으로 탄생하진 않았다. 녹색 또한 대통령 욕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우리의 시선이 공약을 못 지킨 정부 권력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건설 재개와 원전 축소의 간극에서, 정부를 향한 문제제기와 시민을 향한 정치를 함께 해야 한다. 경제성장과 안보는 한국 사회 양대 기조였다. 박정희 체제는 '정치를 유예한 성장'을 택했다. 오랜 권위주의 체제에 맞선 민주화의 흐름은 우리 사회의 중요 가치로 자리 잡았으나, 성장지상주의까지 극복하진 못 했다.

노동.생태.여성.평화와 같은 의제는 더 많은 정치를 필요로 한다. '압축적 성장'과 '한강의 기적'은 우리 모두 누리고 있으나, 군부독재처럼 극복해야 할 대상은 분명하지 않다. 녹색은 지난해 촛불처럼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의 '막는 싸움'과 '만드는 싸움'을 해야 한다.
▲ 신고리 5·6호기 공사 부지 전경. 건설 중단 전인 5월 말 종합 공정률은 28.8%, 실제 시공률은 10.4%였다. 제공=부산일보
더 많은 녹색, 더 많은 정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는 옳고 그름만으로 바뀔 수 없다. 나와 다른 이들을 존중하면서 가야 한다. 다수의 결정에 무조건 승복하란 말이 아니다. 승자독식에 맞서 소수의 목소리를 키워,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듣게 해야 한다. 풀뿌리를 그냥 두면 풀이 썩는다. 풀뿌리는 연결돼야 강하다. 녹색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 결사의 힘을 만들자. 더 많은 정치로 녹색의 가치를 확산하고, 함께하는 시민들을 조직하자.

나아가 사회운동에 머물지 않고 정치의 영역에서 대표돼야 한다. 녹색 사회, 정부, 국가를 만들려면 적어도 열 명 중에 한 명의 입법 권력을 지녀야 한다. 현재 조직적으로 대표된 녹색정치는 국회에 없다. 현대사회에서 정부의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크다. 자본, 기업 권력도 엄청나다. 관료와 자본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약자들의 시민권을 지키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녹색 친구를 만들고 녹색 의제를 알리자. 함께하는 이들과 소통하는 훈련을 하자.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자. 적극적으로 정치에 나서자. 또 다른 공론화, 또 다른 신고리를 계속해서 이야기하자. 우리에겐 더 많은 녹색, 더 많은 정치가 필요하다. 탈핵과 녹색의 길은 2017년 10월20일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지 않는가.
▲ 허성근 교도/신촌교당, 녹색당 전국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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