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은 교무

도덕을 배우러 온 제자들에게 소태산은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드는 방언(防堰) 일을 시켰다. 몸을 쓰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육체적인 노동을 하면 수고는 배가 된다. 그러니 소태산은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보면서 한 없는 미안함과 애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서품 8장은 창립의 어려운 시기에 합력하고 수고하는 제자들을 위로하며, 함께 만들어갈 도덕공동체의 가능성을 짐작하도록 말씀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이미 완성한 분야를 배우는 일도 힘이 들지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는 것은 더 많은 신념과 수고가 따른다. 영어의 개척자(pioneer)를 의미하는 어원은 스페인어 'peon'에서 유래됐다.'발(foot)' 또는 '보병(infantry)'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스스로 발로 뛰고, 길을 만들어야 하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호주 시드니교당에 발령받고, 도착했을 때의 긴장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초심을 챙기는 지침서로 여전히 삼고 있다. 교당은 발령받은 교역자가 경제와 교화를 함께 담당하기 때문에 새 임지에 대한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더군다나 해외교화지는 그 부담이 더 했다.

그래서 처음 시드니교당을 개척하신 교무님의 수고를 잊지 않고 감사할 여력도 없었다. 주임교무님과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전투적으로 절약을 실천하고 있었다. 세탁을 하거나 목욕한 후 물을 모아서 청소를 하고 다시 화장실 물로 사용했다.

야채를 직접 심어 기르거나, 큰 시장에서 상인들이 팔지 못하는 것들을 가지고 와서 반찬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 위기와 수고가 창립정신의 실천으로 여겨져서 보람이 더 컸다.

아직도 우리 교단은 창립시기다. 스스로 개척자임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필요한 분야를 지금 시작하면 교단의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위기로 느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우리는 기회로 여길 때다. 소태산은 창립시기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만드는 회상은 과거에도 보기 어려웠고, 앞으로도 보기 어려운 공동체라고 자신했다.

왜냐하면 도학과 과학이 함께 하도록 했고, 활동과 고요함이 잘 어울리도록 하는 법이라고 했다. 또한, 동서양의 어울림과 모든 종교와 사상이 함께하는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는 소비의 주체가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고, 소그룹의 관계중심으로 시장이 바뀌어 간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소태산이 만들어 놓은 10인 1단의 소규모 교화단 모임공부법과 법을 자유롭게 문답하고 회화하는 공부를 이미 제시해 주지 않았는가! 경계는 공부기회인가? 공부로 삼는 사람에게만 기회이다. 아홉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과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치열한 수행의 지침서를 각자 마련하고 기다려야 한다.

마음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마음에 공들이고 그것에 대한 공부를 지도하고 나눌 수 있는 실력자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직장에서 동네에서 공부모임이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마을마다 교당이 생긴다는 소태산의 예언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와룡산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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