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길튼 교무/나주교당
▲ 성가 144장을 작사한 양해관 교무는 모든 가정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감사생활하는 일원가정을 염원했다.
가정은 인연의 원형, 인연작복의 최전선…그 소중함 담은 곡
모든 정감 담아서 일원가정 가꾸겠다는 다짐으로 불러야

144장) 해와 달이 돌고 돌아(一圓家庭의 노래)
양해관 작사 / 김동진 작곡

해와 달이 돌고 돌아 세상 밝히고
하늘 땅이 서로 도와 만물 기르듯
어버이 품 안에서 아이 자라고
아이들의 웃음으로 즐거운 하루
우리 집 모두 모두 고마운 사랑
서로서로 감사하는 일원의 가정

우리 집 모두 모두 고마운 사랑

〈성가〉 144장 '해와 달이 돌고 돌아'는 '일원가정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곡으로, 양해관 교무가 재가출가 모든 가정이 감사생활하는 일원의 가정이 되기를 염원하며 작사한 노래이다. 양해관 교무는 유아교육을 전공하였고 유아교육기관을 오랫동안 운영해온 유아교육자이기도 하며, 월간 〈원광〉에 자녀의 성장과정을 진솔히 펼쳐낸 '하늘사람 이야기'를 오랫동안 연재해 왔다. 이 '하늘사람 이야기'를 통해서 자녀는 어른이 되어 보은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해 가는 과정이 부모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는 것으로, 자녀의 성장 자체가 은혜라는 감각감상을 진솔히 전개하고 있다.

양해관 교무는 이러한 아이들과의 경험을 통해서 만일 사은 너머의 제5은이 있다면 '자녀은'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자녀는 가정의 꽃으로 부모와 자녀는 서로서로 '고마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이되 고마운 사랑으로 부모와 자녀는 서로에게 있어 고마운 사랑이라는 것이다.

〈성가〉 144장의 노랫말처럼 해와 달, 하늘과 땅은 부모의 역할과 표현하고 있다. '해와 달이 돌고 돌아 세상 밝히듯' 부모가 아이를 돌보아 자라게 하고, '하늘 땅이 서로 도와 만물 기르듯' 부모가 서로 합력하여 자녀들을 길러낸다는 것이다. 부모는 엄부(嚴父)와 자모(慈母)로 상징되는 역할에 따라 아이를 기른다. 이는 생물학적 구분이 아니라 부모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가정은 부모은이 발현되는 현장이라는 것이다. 해와 하늘의 역할과 달과 땅의 역할을 아버지와 어머니, 엄부와 자모의 역할에 연결시킨 것이다. 그렇다고 이 역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아버지가 어느 때 엄부였다가 어느 때는 자모가 되고 엄마가 어느 때는 자모였다가도 엄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모의 역할이 잘 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웃음꽃이 피어나고 즐거운 하루'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효친이 있는 집안은 "서로 서로 감사하는 일원의 가족"이 될 것이다. '일원의 가정'은 일원상의 진리를 모시는 가정이다. 서로 서로 감사하는 그 속에 일원상의 진리가 발현되는 것이니, 일원의 가정은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진급이 되고 은혜를 입는 가정인 것이다.

서로서로 감사하는 일원의 가정

가정은 첫째, 인연의 원형이다. 아버지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남성상의 원형이며 어머니는 여성상의 원형이니, 이 원형에 어두운 상처가 있게 되면 일체의 인연관계에 장애가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권위로 상징되는 상사와의 관계에서 상처 입은 아버지상이 투사되면 그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며, 또한 어머니상에 상처가 있으면 어머니로 상징되는 관계에 문제가 발생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그 기저에는 이 원형의 아버지상과 어머니상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원형의 부모상에 상처가 있을 때는 부모와 화해할 때 모든 인연의 어두운 관계가 풀려져 인연을 대하는 시각이 맑아지고 밝아질 수 있다. 화해의 기초는 부모에 대한 어두운 생각 자체를 참회하는 것이다. 참회를 할 때 원형의 부모상에 의해 가려져 있던 어두운 장막이 걷혀 모든 인연을 화창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가정은 인연작복의 최전선으로 인연관계 속에서 복락을 장만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현장이다. 남편과 아내사이, 부모와 자식사이는 인연작복의 공식을 터득하는 일선이다. 공식을 모르면 문제를 풀 수 없듯이 인연작복 공식을 가정에서 잘 배우지 못하면 사회생활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삶이 힘들어 진다. 이처럼 가정은 인연작복을 체득하는 시발점이 된다.

가정에는 도가 있다. 가까이는 부부의 도와 부모의 도, 자녀의 도, 형제 친척의 도가 있다. 이 도를 따라 실행하면 부부사이에 은덕이 피어나고 부모사이에 은덕이 솟아나고 자녀와 형제사이에 은덕이 펼쳐진다. 특히 일원가정은 부모보은의 실천장이며 자녀를 일원의 부처님으로 기르는 배양장이니 일원의 도를 따라 그 덕을 실천하는 첫 걸음이 된다.

셋째, 가정은 공익의 기반이 된다. 과거의 가족이 대가족의 가문이라면 근대의 가족은 자본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아빠-엄마-자녀의 단순한 삼각형 구조의 가족으로 재편되었다. 근대이후의 가족은 소비의 최전선이 되어 아빠-엄마-아이라는 가족 삼각형은 철저하게 아이를 소비의 주체로, 자본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구조에 갇히게 되었다.

이러한 닫힌 가족 삼각형을 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가족만을 위하는 사상을 공도를 위하는 사상으로 가꾸는 소태산의 가족관인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과거 공도사업의 결함 조목으로 "가정에 헌신하여 가정적으로 숭배함을 받는 것과 공도에 헌신하여 공중적으로 숭배함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적었음이니라"라고 제시하고 있다. 가족을 소비의 시장에서 선물을 나누는 나눔의 공간으로 가꾸자는 경륜인 것이다.

가족은 열린 가족이 되어야 한다. 닫힌 가족은 부(父)-모(母)-자녀의 가족삼각형만을 위한 삶이 되어 고독한 가족이 되고 만다. 교육 중의 교육은 관계를 열어주는 것으로, 관계는 대화이며 이는 타자를 존중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면서 서로 함께하는 연대하는 관계를 가족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연대', '개인 있는 우리'을 실현하는 최전선이 가족이다. 만일 개인의 가치가 존중되지 못하고 조직에 종속되고 희생하는 개인으로 길러진다면 이는 우울한 삶이 될 것이다. 개체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그런 찬란한 주인공들이 서로 함께하여 유대를 갖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 이런 열린 가족이 될 때 개인의 자유와 타인의 권리가 동시에 존중되는 사회로 진화해 갈 것이다.

넷째, 가정에는 뜰이 있어야 한다. 가정의 뜰은 바로 아빠-엄마-자식의 관계성이다. 엄마와 자식의 관계가 친밀성을 형성한다면 아빠-자녀의 관계는 사회화를 길러준다. 엄마로 상징되는 친밀성의 관계가 약해도 안 되고 아빠로 상징되는 사회질서의 관계도 약화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를 소태산은 자모와 엄부로 상징하고 있다. 가정이란 뜰에서 친밀성의 관계와 질서의 사회성이 아울러질 때 자녀는 주체성과 사회성이 확립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언제부터 가정을 형성해 왔는지는 몰라도 가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중요한 뿌리다. 대산종사는 "가정은 낙원이요 불국정토라 부모님은 자비불이시니 자녀는 불보살로 진리가 부모님께 의탁시켰다. 그러므로 서로 진리와 도와 법과 철학으로 스승삼고, 상봉하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여 보은의 일꾼이 됩시다"라며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세전〉에서는 "가정은 인간생활의 기본이라, 사람이 있으면 가정이 이루어지고 가정에는 부부로 비롯하여 부모 자녀와 형제 친척의 관계가 자연히 있게 되는 바, 그 모든 관계가 각각 그에 당한 도를 잘 행하여야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 안락한 가정, 진화하는 가정이 될 것이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가정은 모든 관계의 근간이 된다. 가정이 올바르지 못한 사회는 뿌리 썩은 나무와 같기 때문이다. 가정은 일상생활에서 마음공부하는 터전이며 좋은 세상을 가꾸는 평천하의 기본인 것이다. 즉 가정은 인간생활의 기본이요 바탕이다. 가정을 통해서 사회생활도 잘 전개할 수 있고 국가경영도 잘 운영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가정의 도를 잘 실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회생활이나 국가적인 일을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바탕이 된다는 것이지 전제가 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일원의 가정은 일원상과 더불어 그 진리의 깊은 맛을 체험하여 부-모-자의 관계에서 고마운 사랑이 넘치는 감사생활을 누리자는 것이다.

원음 산책

〈성가〉 144장 '해와 달이 돌고 돌아'의 일원가정의 노래를 듣노라면 소풍가는 기분이 떠오른다. 가족들이 즐겁게 재잘거리며 소풍 떠나려하는 그 설레는 마음이 든다. 리드미컬한 박자는 기분을 살려주면서 이상을 향해 가고자하는 추진력이 있는 듯하며, 리듬 있는 발걸음 같은 박자감은 생동 있는 기운을 주면서 꿈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 있다. 〈성가〉 144장은 올림표가 있는 '즐거운 하루'를 음감 있게 부르면 더욱 정감어릴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으로'를 식구들이 저녁식사를 다 마치고 서로 모여 재잘거리는, 웃음으로 정답게 노닐 듯이, '웃음으로'에서 한 호흡 들이쉬고서 치고 오르는 산행처럼 부른 후 '즐거운 하루'의 반음올림의 변음에 따라 업(up)하여 부르면 노래의 맛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리고서 마지막의 '서로 서로 감사하는 일-원의 가-정'에서 이 노래의 모든 정감을 다 담아서 일원의 가정을 가꾸겠다는 다짐의 원력으로 부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성가〉 144장은 <해와 달이 돌고 돌아>는 김동진 작곡으로 원기75년(1990)에 교화부에 의해 〈성가〉로 제정된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