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갤러리 20

▲ 순천만 갈대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대동 언덕에 자리한 도솔갤러리는 '기억세포'라는 주제로 양수균 개인전을 30일까지 진행하고 있다.

민속자료와 미술품, 모두 무상으로 기증
지역작가 위해 10년 동안 기획전시 진행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온전한 연안습지, 순천만. 동천과 이사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돼 순천만에 이르기까지 10리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마침내 겨울이 되어야만 하늘 향해 하얗게 꽃피우는 순천만 갈대. 그 황금빛 갈대 물결, 마음 안에 욕심껏 담고 싶어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한 취재길이다. 순천만 갈대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대동 언덕에 자리한 도솔갤러리, 그곳에서 바라본 순천만 갈대숲. '바람이 부는 날, 갈대밭에 서면 사람들은 갈대바람이 된다'고 표현했던가. 하늘만큼 높이 자라는 갈대밭 사이로, 사람들은 어김없이 '갈대바람'으로 흔들렸다.

양수균 개인전, 기억세포

도솔갤러리 1층 전시실에 발길이 먼저 닿는다. 양수균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언제였던가, 그의 작품을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가 그린 우산은 활짝 펼쳐진 모습이 아니다. 누군가가 비를 피한 뒤, 구석진 공간에 꽁꽁 묶어 둔 모양처럼, 우산은 그 자리에 있다. 그 모습 또한 특별한데, 조각조각 옷을 입고 있다. 대개의 그림들이 작가의 인성과 감성, 경험과 관념이 투사되듯 작가는 어린 시절 기억의 편린들을 한 조각씩 맞춰나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작가의 작품을 이렇게 풀어냈다.

'버려진 우산, 나의 모습일 수도 있고,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었다. 내 작품 속 우산은 우리들의 자화상을 의미한다'던 양수균 작가. 그의 작품을, 이곳 도솔갤러리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우산이라는 사물을 매개체로, 자신의 오래된 기억을 하나씩 풀어낸 작가의 작품. 작가가 담아낸 삶의 편린들은 '기억세포'라는 주제로 30일까지 이곳 갤러리 공간 안에 머물 것이다.

▲ 10년 동안 지역작가들을 위해 기획전시 공간을 열어두고 있는 도솔갤러리 정일균 관장.
도솔봉에서 따온 '도솔'

정확히는 순천만생태공원 입구 주차장 맞은편에서 도솔갤러리를 운영하는 정일균 관장. '10여 년 전, 갤러리를 오픈했다'는 그 또한 조각가로서 예술인의 삶을 살아왔다. 커다란 바윗돌을 쌓아 다진 자연축대에 안팎을 노출콘크리트로 처리한 20여 평의 갤러리가 있고, 2층은 붉은 벽돌의 갤러리 카페로 이어진다. 조각가인 그가 직접 지은 갤러리다.

"도솔갤러리의 '도솔'은 고향 뒷산 성불사 도솔산에서 따왔다"고 말하는 그는 역사와 삶의 흔적이 배어있는 고미술품에 관심이 많다. "간송 선생을 존경한다"는 그.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우리 것을 지켜내고 이를 박물관에 모두 기증한 간송 전형필 선생의 일생은,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줄 만큼 울림이 컸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고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내보이는 그다. 생각해보면 그의 말은 군더더기가 없는 담박한 단문이다.

우리민족의 역사, 문화, 예술에 담긴 혼의 가치가 소중함을 깨달은 그는, 이후 고미술품을 수집하러 전국을 답사하고 사라져 가는 많은 고서와 민속자료 등을 수집했다. 이렇게 모아진 고미술품은 여러 곳에 기증됐다. 광주직할 시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것만 해도 5톤 트럭 1대 분량, 독립기념관과 모 방송국 개국 70주년 행사 때도 미술품을 기증했다. 그 많은 민속자료들과 미술품을 모두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후손들에게 교육적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현재 그가 보유한 고서 중에는 매천선생이 그의 할아버지에게 보낸 친필 서신과 책 등 10여 권이 있다. 또 고광순 의병장과 그의 할아버지가 나눈 편지도 보유하고 있다. 독립청년단에 입단한 그의 부친이 중화민국대사관에서 나라 걱정하던 이야기를 전하는 서신도 눈에 띈다. 그의 마음 한 가운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찬 걸까. 조부와 부친의 사진을 일부러 챙겨와 보여주는 그의 목소리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상기됐다.

▲ 도솔갤러리 1층 전시실은 기획초대전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역작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전시 공간이다.
▲ 박물관에 기증하고 보관 중인 민속자료와 고서들.
일년 내내 열리는 전시

이야기는 갤러리 작품 전시로 이어졌다. 도솔갤러리는 한 달씩 기획초대전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역작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전시 공간이다. "내년 7월까지 전시 예약이 돼있다"고 전하는 그는 "10년 동안 하루도 갤러리 문을 닫은 적이 없다"고 그간의 전시일정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작가들이 언제든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갤러리 공간을 개방하는 일이 그다지 특별한 일도, 남다른 일도 아니라는 그의 생각이 읽혀진다.

"이 공간에서 부담 없이 전시를 하고, 이를 계기로 예술인들이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고 말하는 그. 그는 이렇게 한 달간 진행되는 기획전시 공간 지원을 통해 '젊은 예술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주고 있다.

도솔갤러리는 젊은 예술인들의 전시공간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자기 색채 독특한 지역작가들의 내면의 울림, 이를 승화한 작품들이 전시공간을 빛내고 있다. 정미희 작가는 그의 작품 '연(蓮)을 이야기 하다(Raconter le lotus)'를 통해 현대인의 지친 삶을 모노톤한 단색조로 표현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를 겸해 전시회를 준비한 정선 작가는 심연(深淵)이 연상되는 짙은 남색의 바다, 노란 꽃길 위를 비행하는 작은 새의 모습을 화폭에 새겼다. 못 다 핀 청춘들의 날갯짓, 어디든 훨훨 날아가기를 바라는 애달픈 마음이 갤러리 공간에 가득 찼다.

정 관장과 인사를 나누고, 툭 트인 창가에서 바라보던 갈대밭을 걸어보기로 했다. 때론 은빛으로, 때론 잿빛 되어, 때론 금빛으로 흔들리는 갈대 군락. 그대로가 갯벌이 만든 꽃밭이다. 또 한 사람에게 순천만 갈대밭은 더 각별해질 터이다. 도솔갤러리, 그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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