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장겸 사장에 대한 해임 결의 건이 조만간 MBC 대주주인 방문진 임시 이사회에서 처리될 예정이어서 MBC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사진=YTN 화면 갈무리
‘명박씨(MBC)’를 위한 방송, 공영방송은 신뢰를 회복할까
국회에 계류 중인 방송관계법, 원점에서 다시 손봐야
공영방송 민주주의 튼튼해지도록 시민이 감시하고 참여해야

요즘 운전할 때 MBC 라디오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파업으로 인해 음악방송을 편성하고 있다는 안내 멘트를 가끔 내보낼 뿐 계속해서 음악을 들려준다. 애써 스스로 선곡하지 않아도 참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라디오가 새삼 고맙기까지 하다. 이런 MBC가 청소년에게는 어용방송의 대명사다. ‘MBC’ 수업(입 Mouth과 칠판 Blackboard, 분필 Chalk로만 하는 지루한 수업) '명박씨'를 위한 방송 등으로 조롱한다. 한 때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PD 수첩' 등의 주옥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MBC가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KBS와 MBC 노동조합이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벌인 지 두 달이 넘었다. 보도를 비롯하여 프로그램 제작은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취재를 제대로 못 하니 뉴스의 질이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부족하여 녹화뉴스로 땜질을 하기도 했다. 재방송 또는 편집한 프로그램으로 시간만 메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장들은 도무지 공영방송을 정상화시키려는 최소한의 의지와 책임감도 없다.

공영방송은 필요한가?

많은 사람들이 공영방송 파업에 대한 화제가 나오면 이렇게 말한다. "그 까짓 거 KBS, MBC 없으면 어때. 안 그래도 볼 거 많은데. JTBC가 잘하고 있잖아." 일리 있는 말이긴 하지만 그건 지극히 짧은 생각이다.JTBC나 뉴스타파 같은 새로운 언론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 평균 천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공영방송의 뉴스를 본다.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이 사사건건 개혁을 발목 잡는다면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힘을 모을 수 없다.

공영방송다운 공영방송이 꼭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자본의 입김에서 벗어나 공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인 까닭이다. 공영방송이 정권의 추이에 따라 권력에 휘둘릴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공익에 반하는 유료채널이나 민영방송에 대항할 SNS와 대안 언론들이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낮다. 특히 접근성 문제가 심각해 이런 수단으로 정보를 접할 수 없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지역으로 갈수록, 고령층일수록 공영방송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국민의 엄청난 돈이 들어간 공영방송이 잘 운영돼야 여론의 균형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보수정권 9년, '언론은 죽었다'

지난 수년간, 언론을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정치권력 앞에 공영방송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신뢰도와 영향력은 땅에 떨어졌고, 공영방송다운 보도, 공영방송다운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주장한 사람들은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공영방송 경영진은 200여 명이 넘는 언론인을 해고 또는 징계했다.

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이 지금 해경을 밟아놓으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KBS 세월호 보도에 개입했다. 이처럼 보수 정권은 단 하루도 언론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공영방송의 완전한 정상화는 정치권으로부터의 영구적 독립이 필수적이므로 방송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공영방송 이사회는 국민과 시청자들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이 직접 통제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민주적 여론 형성과 권력 감시라는 공영방송 본연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을 위해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를 바꿔 여야 합의 없이 공영방송 사장을 뽑을 수 없도록 한 방송관련 법률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인 방송관계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등) 개정안은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의원 162명이 발의했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회의 여야 추천 비율은 KBS 7대 4, MBC 6대 3이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 이사회는 그동안 정부여당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사장으로 뽑는 거수기 역할만 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여야 추천 비율을 7대 6으로 조정하고 사장 선출 시에는 이사회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언론장악방지법'이라고 불린 이 법안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9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법 개정안을 논의하기 위한 법안 심사 소위원회를 열었지만 여야의 견해 차이만 확인한 채 끝났다.

문제는 이 법안을 자유한국당만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당 안에서도, 심지어 방송법 당사자인 MBC 노조원들도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여야가 비슷한 비율로 이사를 추천하는 것만으로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이 담보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이 아닌 시민사회에서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명박근혜 정권'동안 공영방송이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다룬 최승호 감독의 영화 공범자들.
공영방송 바로 세우려면

언론계 안팎에서는 이미 다양한 대안이 거론된다. 2012년 MBC에서 해직된 이용마 기자는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단 모델에서 따온 '국민대리인단'이 공영방송 사장을 뽑자는 제안을 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공영방송 이사진을 원내정당이 한 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이사들은 시민 추천인단이 추천하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선 관련 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늠할 수 없으므로, 언론의 책임은 무엇보다 무겁다. 권력도 언론이 스스로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 파업은 KBS와 MBC의 파업, 언론노조 조합원들만의 파업이 될 수 없다.

최근에 복직된 YTN 노종면 기자는 '공영방송이 꼭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공영방송은 아주 대단한, 크고 의미 있는 시민사회의 무기다. 그 제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데 그걸 역할을 못했다고 버리나. 소유권을 놓으면 안 된다. 언젠가 고쳐서 쓸 수 있으니까. 내 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나."

그래서 이번 공영방송 파업은 우리의 파업이어야 한다. 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 진실성과 공정성 그리고 시민들에 대한 책임성을 회복하고 더욱 다듬어가는 과정을 시민이 함께 해야 한다.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을 하든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대국민 여론전의 기지로 만들게 해서는 안 된다. 공영방송 내부의 민주주의가 더욱 튼튼해지고 내부 권력에 대한 합리적인 통제 장치들이 견고해지도록 시민이 감시하고 참여해야 한다.

'기레기' 없는 사회를 위해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예은 아빠’ 유경근씨(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가 지난 9월8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언론 노동자에게 토해냈던 말이 가슴을 찌른다. "망가진 언론의 피해자는 언론 노동자가 아니라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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