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진 교도/마포교당·한양대교수
불신의 책임은 사리사욕 앞세운 지도자가 져야
소태산 법으로 신뢰의 위기 극복하는 모범 제시하자

11월과 12월은 입시의 계절이다. 2018학년도 대학 입학을 희망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과 재수생 및 가족들이 아무쪼록 원하는 결과를 얻기를 기원한다.

최근에 대학 입시와 관련하여 '학생부종합전형'이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학생부종합전형은 대학이 지원자의 고등학교 3년간 학업성적, 교과 및 교과 외 활동, 교사의 평가가 기록되어 있는 학생부를 주로 이용하여 지원자의 전공에 대한 관심, 지적 능력, 인성 등 여러 면을 평가하고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전형이다. 1990년대까지는 시험점수만으로 지원자의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이 전형방식의 비중이 높아져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아 보인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서 대비하기가 어렵다, 교사의 관심이나 고등학교의 교육 여건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 학생부를 위한 사교육이 횡행한다, 학생부 내용을 신뢰하기 어렵다, 객관적이지 않다, 대학이 특수목적 고등학교에 비해 일반 고등학교 출신 지원자를 차별할 것이다는 등 비판이 거세다. 최근 한 조사에서는 심지어 예전과 같이 시험 점수만으로 합격을 정하자는 여론이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1990년대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며 시험 일변도의 입시를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서 현재의 다양한 전형방식이 고안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조사 결과이다.

그 조사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에 교사와 대학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다. 고등학교 교사가 성실하고 공정하게 학생을 평가하리라 믿고, 대학이 최선을 다해 공정하게 지원자를 평가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과연 객관적이었으나 결코 교육적이지는 않았던 시험 일변도의 입시제도로 돌아가자고 할 것인가?

입시제도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불신이 강하다. 예를 들어 최근에 살균제가 들어간 계란이나 생리대의 화학약품 문제에서 나타난 일들을 보면 일부 제품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니 모든 제품이 다 그럴 것이라고 의심하고 제품의 유해성에 대해 정부, 기업이나 전문가가 내놓은 설명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모든 업체를 다 조사해보고 검사를 반복하고 경찰과 검찰이 동원되어야 했다. 신뢰가 부족하니 국가는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큰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는다.

<논어>의 '안연'편에는 이런 대화가 있다. 제자 자공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물었다. 공자가 답하였다. "먹을 것을 풍족히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어야 한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 세가지 중 한 가지를 부득이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 자공이 또 물었다. "남은 두 가지 중 또 한 가지를 부득이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먹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모두 죽지만 백성들이 신뢰하지 않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한 나라의 미래에 경제적 풍요와 강한 군대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라는 말이다. 나라의 법률과 제도, 정부기관의 선의와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분열하고 위기에 무너지며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국가뿐만 아니다. 단체는 구성원이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으면 쇠락하고 가정은 가족이 서로를 믿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우리나라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간에 신뢰가 서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통치자가 국민을 버리고 지도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득을 얻고자 지도받는 사람을 속이고 이용한 일이 너무 많았다. 소태산 대종사가 최초법어에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을 포함한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끊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신뢰의 위기를 겪는 우리 사회를 구하기 위해 원불교인,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야 한다. 우리가 나서서 대종사의 법으로 길을 밝히고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그러했듯이 교당에서, 기관에서, 교단에서 신뢰받는 지도자, 신뢰하는 공동체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젊은이가 더 나은 나라, 나아가 광대무량한 낙원에서 살도록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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