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방룡 교수/충남대학교 철학과
원불교, 한국 4대 종교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유…'원불교학' 학문적 뒷받침 빼놓을 수 없어
도학 겸비한 정산종사로부터 학맥 이어받아…종교학자 소명과 열정으로 평생 일관해
소태산 사상의 독자성, 전통 근거, 일체 종교 및 사상과 회통…교학적 연구 방향 이미 정립해


올해는 여산 류병덕(법명 기현·1930~2007) 교수님이 열반에 든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듯이 많은 것이 변화했다. 그런데 시간이 변하면서도 더욱 또렷이 다가오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스승님이다.

여산 류병덕 교수와 인연

교수님은 원광대 원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전북대 철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셨고, 필자는 전북대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원광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학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박사과정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1995년 2월부터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의 조교를 맡게 되었다.

당시 교수님은 정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태였지만 왕성한 학문적 활동을 할 때였고, 교수님의 국내외 강연과 학술대회 등에 함께 참가하곤 했다. 그렇게 시작된 교수님과의 인연은 예기치 않은 발병으로 교수님께서 의식을 잃으셨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교수님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보살핌으로 인해 필자의 삶은 본격적인 학문의 길로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교수님과의 인연이 남아 있겠지만, 필자 또한 말석에서나마 교수님을 모신 인연이 있기에 그 속내를 토로하고자 한다.

4대 종교와 원불교학

1916년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으로 탄생한 원불교의 지난 100년간의 역사가 실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신종교가 탄생했지만 원불교만큼 탄탄하게 뿌리내린 종교는 거의 없다.

한국사회에 4대 종교의 하나로 원불교가 뿌리를 내리게 된 데에는 대종사의 대각한 일원상진리의 진실성에 기초한 것이지만, 이 같은 교단의 성장은 수많은 교역자의 '희생적 정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원불교학'이 만들어져서 학문적 뒷받침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생사의 문제에 골몰하다가 원불교 초기교서인 〈불교정전〉에 나타난 일원상(O)을 보고 감명을 받고서 자진하여 원불교에 투신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 한평생을 원불교교단의 발전과 원불교학의 정립, 원불교 교역자 양성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셨고 수많은 업적이 그것을 입증한다.

'도학을 겸비한 정산종사로부터 학맥을 이어받아 원불교학을 정립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완수한 인물'로 필자는 교수님을 기억한다. 물론 원불교학을 정초한 1세대 학자로 소위 4박사님이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류병덕 교수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 원불교학의 기초를 세운 여산 류병덕 종사.
〈일원상 진리의 연구〉

학문의 장은 전쟁터이고, 학자의 길은 전사의 길과도 같다. 더욱이 새로운 종교의 교리를 학문의 장에 올려놓고 인정받는 작업은 실로 고단한 사투의 과정이 아닐 수 없다. 1974년에 제출한 교수님의 박사논문의 제목은 〈일원상 진리의 연구〉이다. 이 논문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거기에는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 내용을 학문적으로 논증하고자 하는 소명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 서문에서 교수님는 "소태산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대략 삼단계로 전개된 논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제1단계는 소태산의 독자성 다시 말하면 그의 독창적 특징을 제시하려는 입장을 밝히는 일이며, 제2단계는 그의 독자적 이념은 어떻게 전통사상에 근거할 것인가에서 불교를 주체로 한 입장을 밝히는 일이며, 제3단계는 소태산의 대각에 의한 주체성이 불교뿐만 아니라 마침내 세계 제종교 제사상과도 만날 수 있는 입장을 드러내는 일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관점에서 보아도 '원불교학이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실로 명쾌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여 원불교학을 학문적으로 정초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교수님은 끊임없이 고전을 탐독하고 학계의 새로운 발표를 주시했고 종교계의 현장을 발로 누비는 한편 학자와 종교계의 인사들과 교류하고 대화하였으며, 원불교학의 국제적인 지평을 확장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셨다.

종교학자의 소명, 그리고 신념

교수님은 평소 "종교학자는 하나의 종교에 완전히 빠져서 철저한 종교적 체험을 해야 하지만, 다시 거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자기의 종교에 대한 신념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씀했는데, 그것은 당신의 삶의 체험 속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밖에 있는 많은 학자들은 원불교 하면 류병덕 교수님을 떠올린다. 그것은 원불교와 당신의 학문세계가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의 태도와 열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일으켰다. 교수님은 소태산 대종사의 사상을 전파하는 전도사로서의 사명에 항상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같은 태도가 타종교인이나 학자들에게 거부감을 자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원불교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은 원불교 수행력의 결과였다.

누구를 만나면 일상적으로 나눈 대화가 도담(道談)이요 학담(學談)이었으며, 국내외 학술대회나 강연에 참가하면 꼭 가까운 교당을 찾아 현장 교무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격려해 주셨다. 교수님은 외부의 학자나 종교인, 언론인, 정치인, 예술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하셨는데, 거기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부터 낮은 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먼저 정(情)이 통해야 법(法)이 전해진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외부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원불교를 전파하고자 하는 소명감의 발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 원광대학교는 개교70주년을 맞아 여산 류병덕 교수를 대학을 빛낸 인물로 선정, 학생지원관 1층 로비에 흉상 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김도종 총장 등이 참석해 류 교수의 업적을 기렸다.
후학양성의 열정

교수님은 항상 스승으로서 후학을 양성하고자 하는 열정이 남다르셨다. 종교문제연구소엔 항상 교학대학의 학생들과 석·박사의 학생들이 넘쳐났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학문적인 열정을 토해내셨다. 그리고 그 중의 반은 교무나 학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태도나 동기부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교수님의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에서 필자는 원불교인의 삶의 태도를 배웠었다. 교수님이 열반한 지 10년이 되었고, 그 사이에 한종만 교수님과 한기두 교수님 또한 열반하셨다. 그분들로부터 많은 학문을 배우고 사랑을 받았기에 그분들의 빈자리가 갈수록 크게만 느껴진다.

원불교학 위기와 교수님 빈자리

원불교의 교화를 뒷받침 해주는 것은 원불교학이며, 원불교학의 계승과 발전이 없으면 교단의 건강한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원불교학은 그 발판이 되는 불교학과 신종교학 그리고 종교학을 중심으로 한 제반 학문과의 연계성 없이는 학문의 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 같은 점을 교수님은 분명히 자각하였기에 당신의 학문세계는 넓고 방대하였고, 교학대에 원불교학과와 더불어 동양종교학과를 개설하였던 것이다.

지난해부터 원불교의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었지만, 철학계와 종교학계에서 원불교학에 대한 위상은 축소되어가고 있다. 원불교 내부의 학자 층이 감소하고 동시에 원불교학에 대한 외부학자들의 담론도 감소해 가고 있다. 원불교학의 외연은 축소되고 그 학문적 수준 또한 답보상태에 있다. 시대적 흐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교수님의 창조적인 학문세계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원철학, 그리고 여산학

학문이란 기존 연구 성과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원불교학을 정립한 1세대의 학문적 업적에 대한 정리 작업은 교단의 100년 대계를 세우는 중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만이 원불교학맥의 계승과 원불교학의 학문적 발전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태산의 사상을 '일원철학'으로 명명하여 철학계와 종교학계에 학문적 대상으로 올려놓은 중심에는 분명 교수님이 있다. 그렇다면 교수님의 열반과 더불어 원불교 교단의 후원아래 원불교학계에서 '여산학'에 대한 다양한 조망이 이루어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울러 종교학계에서 '여산학'에 대한 다양한 조망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2017년 1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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