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란 내 자신이 부처로 사는 것
마음에 자유 얻는 것이 교화 무기

백인혁 교무

[원불교신문=백인혁 교무] 완도 소남훈련원에 만불전이 있다. 만불전은 여느 전각이 아니라 소나무와 잡목 그리고 작은 돌들이 많은 숲속이다. 지금이라도 그 명패만 걷어 버리면 그냥 숲인 그런 곳이다. 대산종사는 이곳의 돌들을 골라 자리를 다지고 교도들이 오면 그 깔판을 깔고 앉아 야단법석에 동참하게 했다. 이곳에서 스승님은 과거에는 '일여래 천보살'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천여래 만보살'의 시대라며 "어서어서 훈련하여 스스로도 부처님이 되고 가족 국민 더 나아가 전 인류가 다 부처로 살도록 국민훈련 인류훈련 열심히 시켜가자"고 당부했다.

길다고 보면 긴 시간을 교화일선에서 보내며 나는 '교화란 이것이다'고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교화일선에 나서며 '교화란 주세불 소태산 대종사께서 짜주신 교법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심성변화 기질변화 할 수 있도록 잘 가르쳐서 부처로 살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대종사의 교법을 온전히 배운 완전체로 생각했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사령장을 받은 2년차에 여지없이 깨졌다.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는 것도 많고 생활도 나와 별반 다름이 없고 대종사의 가르침을 나름대로 잘 실행하고 있는 부처들이었다. 그 때 그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교리 공부를 다시 했다. 선공부도 다시 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교화의 정의를 다시 내렸다. 교화란 내 자신이 부처로 사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부처로 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부처인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다 행복해야 되고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야만 하지' 하면서 상대방을 도와주는 일에 온 정성을 다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내 앞에 있는 분들보다 내 뒤에 있는 분들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교화현장에서도 힘든 일은 남의 차지가 되고 나는 한쪽에 서서 주로 바라보는 위치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교법을 정확하게 가르쳐서 모두가 바른 공부 길을 잡고 나아가게 해드리자 하고 그간 다 알고 있다고 놓아두었던 연구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다 충북교구에 책임을 맡아 부임하게 되었는데 막상 부임법회를 보는데 교도님들의 연세가 많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저 연로한 교도님들이 자녀들을 어떻게 교당으로 인도하게 할까?' 하는 화두가 생겼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 동원해 보았지만 교도들의 반응은 성품자리 그 자체였다.

어느 날 또다시 나의 교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신심 공심 공부심이 장한 교도들이라도 역시 사람인지라 교당에 오면 재미있고 얻음이 있어야 될 것 같았다.

방법을 찾다가 한자를 가르쳐 달라는 교도들과 한자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간사시절에 익혔던 철자집으로 하루에 8자씩 일주일에 3일씩 가르쳤다. 교도들은 갓 입학한 학생처럼 정말 열심히 배우고 공부했다. 그중에는 과거와 달리 가족들이 달라진 시선으로 본다는 교도들도 있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는 '이런 것도 다 교화의 한 길이구나' 하는 알음알이를 얻게 되었다.

명절이나 대각개교절에는 교당 원로교도나 교당발전에 공이 있는 교도들에게 값진 선물을 드렸다. 그 후 어느 날 그 교도의 자녀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교당을 방문했다. 그것을 보며 그동안 나는 인과를 말하면서 왜 그리 주는데 인색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기회만 되면 지금보다 더 주는 노력을 잘하는 것이 교화의 한 길이라 생각해 본다.

길다면 긴 시간을 수도에 전념하며 살아온 지금 후회가 있다면 젊어서 수도인의 일과를 그냥 의무감처럼 해온 점이다. 스스로 찾아와 한 번 해보겠다고 다짐하고 나선 길을 꼭 남이 알아줘야 가고 안 그러면 안가도 되는 양 살아왔던 시간이다. 수도에 전념하여 마음에 자유의 힘을 얻는 것이 교화의 첩경이고 교화의 가장 큰 무기인 것을 말이다.

재가출가 모든 동지들이 다 아는 것을 뒤늦게 자각하고 이생에 해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야 철이 나 이런 글을 쓰면서도 안타까움이 많다. 어디 가서 이런 스승을 만나고 이런 동지들을 만나며 이런 교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다행이고 다행한 일이다.

/충북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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