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양묵 교도/과천교당, 초등학교 상담사

 3년 전 초등학교 상담사로 근무를 시작한 첫날 일이다. 여기저기 인사를 마치고 상담실로 들어와 청소를 하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순간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소나기를 피해 급히 동굴로 들어오니 호랑이가 떡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 내가 소나기를 피해 호랑이 굴로 들어왔구나….'

사실 나는 어린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상담 과정 중 아동상담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몇 번 하기는 했지만, 사실 어린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웠기에 편하지만은 않았다. 때문에 성인상담만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성인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준비했다. 그런데 급히 일자리를 구하게 되는 상황이 되다보니 앞뒤 가리지 않았고, 결국 초등학교 상담사로 오게됐다. 아동상담은 안 하겠다고 그렇게 버티었는데…. 더군다나 학교 근무는 그다지 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결국 나는 아동상담, 그 중에서도 초등학생이 우글거리는 학교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것도 내 발로 성큼성큼 와버렸다. 요새 아이들 말로 '여긴 어디? 난 누구?'를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야말로 '멘붕'에 '유체이탈'이 될 지경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아동을 만나야 하는 게 나의 숙명인가 보다'고 생각하니 어깨와 마음의 힘이 쑥 내려갔다. 그렇게 그동안 버티던 걱정이 빠지니 마음이 홀가분해지며 편안해졌다. 편안해지니 여유가 생기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며 하나씩 해보자는 마음이 자리잡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초등학교 상담사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이런 생각들로 내가 마음을 열어서인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전처럼 힘들지 않았다. 평온한 상담사의 얼굴을 하며 아이들에게 맞춰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아이들 옆에 있어주니 오히려 나도 편안하고, 아이들도 편안해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순수해서 상대방의 속마음을 금방 알아챈다. 상담사가 자신을 믿어주고 함께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의 울타리를 허물고 상담사와 하나가 되어준다. 어느 날은 상담 받는 아동이 작은 봉지에 인절미 네 개를 담아 왔다. 그 아이는 체험학습에서 인절미를 만들었는데, 선생님과 나누어 먹으려고 먹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가며 상담시간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그 아이와 인절미를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상담 선생님과 함께하고픈 그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온전히 나누고 교류하는 경험 속에서 아이들의 내면의 자아는 힘을 얻으며 성장한다. 참으로 신기하고 경이로운 일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자신감이 없어 안으로 잔뜩 움츠러들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놀이만 하던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학교 행사에서 대표를 맡겠다고 자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을 때의 감동과 보람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햇살이 빗겨간 음지에서, 숨 쉴 틈조차 없어 보이는 바위틈에서도 싹을 틔우는 작은 풀이 있다. 이 풀들처럼, 아이들이 자신의 어려움 속에서 한 단계 자라는 모습을 보며 나도 용기를 얻는다. 각양각색의 삶이, 고민이, 힘듦이,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도 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성장하는 생생한 현장에서 일하며 배울 수 있어 감사하다.

오늘 나는 생각해본다. '동굴 속 호랑이도 마음을 열고 보면 친구가 될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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