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상 작가/북일교당
[원불교신문=정도상 작가] 칠칠 천도재를 지내기로 했다면, 사후의 칠일이 되는 날에 초재를 지낸다. 재를 지내는 이유에 대해 소태산은 〈대종경〉 천도품 29장에서 "천지는 묘하게 서로 응하는 이치가 있나니, … 모든 사람이 돌아간 영을 위하여 일심으로 심고를 올리고 축원을 드리며 헌공도 하고 선지식의 설법도 한즉,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고 기운과 기운이 서로 응하여, 바로 천도를 받을 수도 있고, 설사 악도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차차 진급이 되는 수도 있으며, 또는 전생에 많은 빚을 지고 갔을지라도 헌공금을 잘 활용하여 영위의 이름으로 공중 사업을 하여 주면 그 빚을 벗어 버리기도 하고 빚이 없는 사람은 무형한 가운데 복이 쌓이기도 하나니, 이 감응되는 이치를 다시 말하자면 전기와 전기가 서로 통하는 것과 같다 하리라"라고 말했다.

〈티벳 사자의 서〉는 티베트어로 ‘바르도 퇴돌’이다. 바르도(Bardo)는 '둘(do) 사이(bar)'라는 뜻이다. 그것은 낮과 밤의 사이, 곧 황혼녘의 중간 상태를 말한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의 틈새다. 그리고 퇴돌(Thos-grol)은 '듣는 것으로(thos) 영원한 자유에 이르기(grol)'의 뜻이다. 그러므로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의 순서로 재를 올리는 것은 천도재의 핵심이 아니다.

천도재의 핵심은 '성주'나 '열반 전후에 후생 길 인도하는 법설'을 반복적으로 읽어주어 바르도를 여행하는 영가가 그것을 듣고 깨우침을 얻는 데에 있다. 깨우침의 핵심은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는 이치'이다.

열반 직후에 그것을 듣지 못하고 깨우침을 얻지 못했다면, 영가의 바르도 여행은 참으로 팍팍할 것이다. 천도재를 통해 법신불 사은이 빛을 내려 보내면 영가가 그것을 받아야 한다. 영가는 그 빛을 따라가야만 한다. "그 빛은 모든 것의 근원이며 진리의 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만일 영가가 그 빛을 깨닫지 못하게 되면 또 다른 빛을 보내야만 한다. 또 다른 빛을 보내기 위해 천도재가 있는 것이다. 천도재를 지낼 때마다 영가가 '퇴돌'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지난 생의 업장에 따라 퇴돌 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유족은 영가가 퇴돌 할 수 있도록 재를 올리거나 기도를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영가는 "점점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공포의 환영들이 영가를 사로잡을 것이다. 영가는 사지가 산산이 찢기고 심장이 꺼내져 내동댕이쳐지며 머리가 부서질 것이다. 그러나 그 끝없는 고통 속에서도 그대는 죽을 수가 없다." 천도재는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식이다. 영가가 진급하는 것은 평소의 선업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나 천도재의 기운을 받으면 평소의 선업이 더욱 빛날 것이고 영가의 진급도 순조로울 것이다. 영가의 진급이란 악도로 떨어지지 않고 선도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바르도를 여행하게 되면 끊임없이 빛이 내려오게 되는데, 만일 가족이 천도재를 올려주지 않으면 그 빛이 끊기게 된다. 초재는 법신불사은이 내려주는 빛의 밧줄을 붙잡을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첫 번째 '퇴돌의 의식'이다. 즉, 영가의 여행 경비를 두둑하게 마련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017년 11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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