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숭산 박길진 원광대학교 총장과 함께한 류병덕 종사.(왼쪽 두번째)
종교학회, 종교사학회 창립 주도…원불교 기성종교 반열에 올려
종교문제연구소 창립…종교학계 신종교 연구에도 선도적 역할

[원불교신문=김방룡 교수] 영겁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은 초로(草露)와도 같고, 생(生)과 사(死) 또한 한 호흡 사이에 존재한다. 영원할 것 같은 삶도 잠깐 사이에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처럼 덧없어 보이는 삶이 누구에게나 똑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보살의 삶은 원(願)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원생(願生)이라하고, 중생의 삶은 욕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욕생(欲生)이라 한다. 인간의 삶은 역설적이게도 삶과 마주하고 있는 죽음을 통하여 온전히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것은 한 인간의 삶이 지향한 바가 원생인가 혹은 욕생인가에 따라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류병덕 교수와 원불교

여산 류병덕(법명 기현) 교수의 삶은 '원불교'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당신의 삶을 회고해보건대 아무리 높은 파도가 밀어닥쳐도 '원불교'와 '대종사님'에 대한 믿음과 열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 식지 않는 열정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교수님은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 후 심정인 '심독희자부(心獨喜自負)'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했는데, 일원상 진리와의 만남 이후 바로 당신의 마음이 항상 '희열'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어진다. 〈논어〉의 첫머리에서 학문을 익히면 '희열'이 있다(學而時習之不亦說乎)고 하였고 보살 십지(十地)의 첫 단계가 '환희지(歡喜地)'인데서 알 수 있듯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희열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인으로 거듭난 징표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그러한 교수님의 희열이 존경스러웠고 한편 부러웠다.

원불교학 정립과 역사적 사명

당신의 방대한 학문세계는 '원불교학의 정립'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마치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로 이어진 성자들의 각혼(覺魂)이 지닌 철학적·종교적 의미를 학문적으로 정립함으로써 원불교에 생명성을 부여하고 그 영속성을 가능케 해야 한다'는 대원을 세운 보살과도 같이,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성언(聖言)에 철학적·종교학적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교수님은 원불교 출현의 역사적 의미를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에서 찾았다. 진리에 입각한 종교야말로 인류의 대변혁시기에 적합한 종교이며, 사실적 도덕을 함양하는 것이야말로 실질적으로 인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종교란 살아 숨쉬는 생명체이다. 그 생명력의 길고 짧음과 그 몸짓의 크고 작음은 종교 지도자들의 안목을 보면 예측할 수 있다. 바둑의 승부가 포석에서 결정되듯이 종교 지도자들의 종교적 행위가 몇 년 앞을 내다보고 결정하는지, 또 얼마만한 것을 품고 있는지를 보면 그 종교의 수명과 성장의 정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지도자란 이상적인 목표를 분명히 알고, 자기가 서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과 이상적인 목표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구체적인 대안과 방향을 제시해야만 한다. 삶이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자신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 또한 그 속에서 자각되기 마련이다.

류병덕 교수의 학문세계는 '원불교학 1세대가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 속에서 그 전모가 드러난다. 당신의 학문세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논의와 평가는 앞으로 학문적 작업을 통하여 밝혀야 할 문제이다. 다만 지금의 시점에서 류병덕 교수가 원불교학을 세우기 위하여 어떠한 고민을 했고, 원불교학의 미래에 대한 포석을 어디에 두었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원불교와 원불교학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당연한 책무라 할 수 있다. 마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라는 책의 제목이 주는 영감처럼, 교수님의 오래된 구상 속에 원불교의 미래가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원불교학, 한국불교학 반열에 올려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의 경지를 교수님은 박사논문과 여러 저술 속에서 '변(變)과 불변(不變), 공(空)·원(圓)·정(正), 도(道)와 덕(德), 이(理)와 사(事), 동(動)과 정(靜)' 등 5가지 측면의 상즉(相卽) 및 조화(調和)로 규정함으로써 원불교 해석학의 초석을 다져 놓았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일원철학의 얼개를 만드는 작업이었으며, 그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은 후학들이 몫이라 할 수 있다.

설사 원불교학이 교학체계를 정립하였다 하더라도 학문의 장에서 살아남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새롭게 출발한 원불교학이 어떠한 학문의 영역 속에서 자리매김하여 성장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정산종사께서는 교수님을 전북대 철학과에, 한기두 교수님을 동국대 불교학과에 보냈다. 즉 철학과 불교학은 원불교학이 성장할 수 있는 첫 번째 포석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부응하여 교수님은 일원철학으로 명명하여 철학적으로 원불교 사상에 대한 포문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불교학에 있어서는 한국불교를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불교와 창의적 불교로 대별하고서, 원불교는 한국의 창의적 불교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침체된 구한말의 불교를 개혁한 종교로 정의하였다.

그 창의적 전통은 승랑, 원효, 의천, 보조, 보우, 서산, 사명 등으로 이어졌는데, 소태산은 이러한 원융회통적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시대에 맞게 불교를 개혁했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진리에 대한 일원상(O)의 표상이 선종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논증함으로써, 원불교를 한국불교학의 학문적 반열에 정초하고자 하였다.
▲ 종교문제연구소를 창립한 류병덕 종사.(오른쪽)
종교문제연구소 창립

그런데 원불교학이 부딪힌 또 다른 시련은 신종교일반에 대한 학계와 일반인들의 불편한 시각이었다. 즉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신종교는 미신·사교로 배척되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원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 신종교일반에 대한 학문적 작업을 선도해야만 했다. 교수님은 1968년 종교문제연구소를 창립하여 종교학계에서 신종교연구를 선도하였다. 그리고 최수운의 동학, 강일순의 증산교, 나철의 대종교, 김일부의 정역 및 소태산의 원불교를 '민족종교 5대맥'으로 명명하여 학계에 제시함으로써, 신종교를 학문적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분야의 연구는 매산 김홍철 교수님으로 계승되어 〈한국신종교사전〉이 탄생하게 되었다.

종교학계의 위상과 성과

철학의 분야에서 원불교학이 차지하는 위상과 비교해본다면 종교학 분야에서 원불학의 위상은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내었다. 교수님은 종교학회와 종교사학회를 창립한 주요 인물이자 두 학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종교학노트〉, 〈종교철학〉, 〈한국종교〉, 〈탈종교시대의 종교〉 등 종교학 관련 논저를 통하여 한국종교학계의 담론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이를 통하여 통종교로서 원불교의 성격과 특징을 드러내고, 원불교를 기성종교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교수님이 관심을 가졌던 또 다른 분야는 한국고유사상이다. 이는 원불교의 사상적 시원과 계승을 민족 고유사상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한국 고유사상의 특징을 '한밝사상'으로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주장은 한국종교의 시원에 관한 주요한 학설로 종교학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결국 민족고유의 한밝사상을 시원으로 하여 유·불·선 사상을 종합하고 있는 것이 원불교라고 논증함으로서 한국사상사의 맥락 속에 원불교를 자리매김하고자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원불교 새로운 백년대계, 시작할 일

교수님의 학문세계에 대한 일단을 소개하였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원불교학 정립과 원불교학이 존재하는 학문의 장에 대한 교수님의 안목을 한 눈에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교수님의 안목을 통해 우리는 지금 원불교학이 해결해야만 하는 당면과제가 무엇인지와 앞으로 원불교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원불교의 새로운 백년대계를 세우는 이 시점에서 류병덕 교수의 삶과 학문세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매산 김홍철 교수님과 일산 양은용 교수님 등이 중심이 되어 교수님 사후 '여산 류기현 종사 추모사업회'가 꾸려지고, 지난 2014년에는 추모문집이 발행되었다. 또 다음 달엔 1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며, 지속적인 추모 사업의 필요성 또한 제기되어 있다.

한 종교의 발전은 교학의 발전과 병행되어야만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류병덕 교수님의 업적을 정리하고, 또 그 학문세계를 조망하는 작업은 원불교학의 정체성을 세우는 1차적인 작업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이후 또 다른 교수님들의 학문세계를 정리하는 작업으로 이어져 원불교학 발전의 토대가 될 것이다.

학문이란 연속과 불연속의 과정을 통하여 성장한다. 1세대가 이룩해놓은 학문에 대한 계승과 비판적 해석학이 지속적으로 생산되어야만 원불교와 원불교학의 미래는 밝아지는 것이다.

[2017년 11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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