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꿋꿋이 제 길을 가겠습니다”

진밭 평화교당 주 4박5일 지킴이
가장 낮은 곳, 교정교화에 바친 정성 10년

'우리가 성주성지수호에 나설 때 여건이 준비되어 한 것도 아니고 100%의 가능성이 있어 한 것도 아니다. 일원인의 본분이며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사무여한의 정신으로 순교의 마음으로 분연히 일어나지 않았더냐!'

조봉암 선생의 독립운동 관련 어록에서 따온 내용으로 손법선 교도의 수첩에 또박또박 힘주어 적혀 있는 문구다. 11월29일부로 264일째를 맞이한 진밭 평화교당을 묵묵히 지켜내고 있는 재가출가 교도들이 있다. 그 중에서 대구교당 손법선 교도(67세)는 1주일에 4박5일 진밭을 지킨다. 그를 만나려면 대구 시내에 위치한 그의 집이나 교당보다는 성주 소성리를 찾아가는 것이 더 쉬운 이유다.

어느덧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있는 원기102년 성주성지를 돌아보면 '다사다난'이 절로 떠오른다. 2월27일 사드부지 확정, 4월26일 사드 발사대 2기 배치, 9월7일 4기 추가배치에 이어 지난 11월21일 세 번째로 경찰과 주민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국방부는 5천여 명의 경찰을 배치해 저지하던 주민들을 강제해산시키고 장병 400여 명이 숙소로 사용하는 사드 기지에 난방과 급수관 매설, 오수처리시설 교체 등의 공사를 위해 장비를 실은 트럭을 기지 안으로 들여보냈다.

"밤에 진밭교 컨테이너에서 잘 때 큰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비슷하게 '웅~~'하는 X밴드 레이더 가동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정산종사 구도길도 막혔고 성지가 훼손되고 있습니다. 우리 성지 우리가 지켜야지 누가 지키겠습니까? '우리'라는 말 속에는 '나'가 들어있어 내가 중심이 됐을 때 우리입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서 우리 성지를 지켜내자는 말은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지난해 9월 국방부가 사드부지를 성주로 발표했을 때 그는 직장에 사표를 냈다. 주변에서 성지수호활동도 직장을 다니면서 함께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렸지만 그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됐다. 그 해 10월 성주성지수호 대구경북교구 재가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11월부터 대구백화점 앞 사드반대 거리홍보를 4개월간 했다. 올해 2월27일 사드부지가 성주로 확정되면서 거리홍보를 접고 3월1일부터 소성리로 옮겨와 지킴이 활동을 해오고 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 목요일 오후부터 토요일까지 4박5일 매일 24시간 진밭 평화교당을 지키고 있다. 주중에 수요일 오후에 나가 병원 등 꼭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일요일 대구교당 일요예회에 참석하는 일 외에는 일주일 내내 진밭에 있는 것이 그의 일과다. 평소 치아가 별로 좋지 않아 진밭에 있는 동안 8개를 뽑고 임플란트를 하면서 주로 목요일 오전을 이용해 병원 진료를 다녀왔다.

"10년째 싸우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에 비하면 성주성지는 이제 시작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곳을 지킬 겁니다.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는 변화가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어요. 재가출가 교도들이 관심을 놓지 않는 한 사드철회는 가능하다 확신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코비는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해 급한 일 때문에 중요한 일이 뒤로 밀려나지 않는지 돌아보라고 했다. 그에게 급한 일은 먹고 사는 일이고 성지수호는 중요한 일이다.

"교무님들은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이치를 알기 때문에 한 생을 바쳐서 전무출신을 하는데 저는 남은 생을 사드 나갈 때까지 전념하겠다 마음 먹으니 편합니다. 나이 60세가 넘었으니 살만큼 살았다 싶고, 남은 생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것도 남는 장사지요."

'법신불 사은이시여! 이 생을 다하는 그날까지, 그늘지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과 늘 함께하며 교정교화에서 만나는 인연들과 상생선연을 맺어,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되고자 서원하옵나이다.'해마다 새해 아침 새로 장만한 수첩 맨 첫 장에 옮겨 적는 그의 서원문이다. 교정교화는 그에게 일생의 서원이다. 그는 원기 93년에 입교해 올해 10년이 됐다. 원불교 교정교화협의회 교화국장으로 대구·안동·청송교도소 교정교화 활동에 바쳐온 정성도 10년이다.

그는 한때 세상의 물질개벽에 휩쓸려 잠시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 그의 가슴에 들끓던 세상에 대한 원망심을 정반대로 돌려 은혜와 감사의 길로 들어서게 한 기적이 원불교였다. 교도소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월간 〈원광〉으로 교정교당 법회에 참석하게 되면서 열혈 교도가 됐다. 법회 참석 5개월만에 종교회장이 돼 매주 설명기도문을 직접 작성하면서 교전을 시험공부 하듯이 읽었다. 〈원불교대사전〉을 뒤져 모르는 낱말을 공책에 빽빽하게 적어가며 교전을 샅샅이 공부할 때가 가장 좋았다. 목탁이 없어 혼자 플라스틱병을 두드리며 독경하고 교전 읽으면서 출소하면 교정교화에 몸바치겠다고 세웠던 서원을 10년째 실천하고 있다.

"교정교화의 목표는 출소 후 사회적응 훈련을 위해 꼭 필요한 생활공동체를 짓는 일, 나아가서는 민영 교도소를 설립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정산종사 법문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비방하고 박해하여도 꿋꿋이 이 회상을 지키겠는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또 교법이 원한다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꿋꿋이 제 길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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