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는 하나의 건물 공간 내에 교당과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서 이곳을 찾아오는 많은 러시아 학생들을 접하기는 어렵지 않다. 매주 금·토·일 세 번 운영하는 한국어 수업에는 러시아에 유학 온 40여명의 한국대학생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진해서 보조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이곳에 찾아오는 현지인 학생들과 유학생들이 내 집같이 편히 쉬고 공부하며 문화 활동 할 수 있도록 공간을 개방하고 있어서 사물놀이, 태권도, 한국무용, 한국노래 등 한국문화를 한껏 배우고 즐기는 장터가 되고 있다. 이들이 언제 찾아와도 부담 없고 편한 곳이라 여기도록 교당 식구 모두가 따뜻하고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있다. 매주 일요법회시간에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현지인 두세 명 또는 많을 때는 육칠 명의 학생들이 처음 나와 자기소개를 한다. 입소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요즘은 교당 식구들이 "교법현실구현"의 좌산 상사님 법문 말씀을 오롯이 받들어 공부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공부찬스로 알아차려 굳어버린 습관이나 욕심, 선입견에 끌리지 않고 만나는 기연마다 부처님 대하듯 공부심과 자비심으로 정성을 다하는 속에 교화의 꽃은 더욱 피어날 것으로 믿는다.

우리가 참 일원불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반조해 보았다. 일원불은 우리와 제일 가까이 있고 어디에도 있고 늘 지켜주시고 또한 우리가 하는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상벌을 내려주신다. 일원불을 늘 우러러 모시고 높이높이 받들며 모두 불공 하면 한량없는 은혜를 받고 숙겁다생 업장도 녹아낸다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진리는 모든 것을 속속들이 훤히 알고 있는데 슬쩍 숨길려고 하고 속일려고도 한다. 알아차리리 못한 이러한 마음은 부끄러운 것이다.

내리쬐는 햇볕을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내 몸이 모두 가려진 것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이다. 삼라만상이 먼저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요즘은 한 발짝만 밖을 나서면 어디에나 무인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우리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찍고 있다. 실제는 우리도 이미 무인카메라를 영생토록 몸에 지니고 있는데도 이를 모르고 또는 모르는 척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서 일원상을 늘 가까이 모시며 아뢰고 받들면서 일마다 고백하고 참회하고 불공하면서 영생을 일관하리라 다짐해 본다.

육근은 그저 통로일 뿐이다. 일원상 법어에서 우리 육근을 현실 생활에서 어떻게 사용해야 되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육근은 그저 하나의 통로일 뿐이지만 그 통로가 제 역할을 하도록 유지 관리하는 몫이 참 중요함을 느낀다.

안이비설신의 육근 작용이 비록 겉으로는 건강하게 보일지라도 그 육근을 조종하고 관리하는 주체인 마음이 병들어 있고 깨어 있지 못하면, 육근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어서 보기 좋은 납도끼와 같고 그림의 떡과도 같을 것이다.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육근이 제 역할을 다 하도록 지금 여기 늘 깨어있어야 하겠다.

한편 2017년에는 기간제 전무출신 지원 신청한 사람이 전혀 없어서 참 안타깝다. 그만큼 공심을 가지고 공익을 위한 전무출신 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신심과 공심이 출중하더라도 막상 출가하려고 하면 여러 조건들이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 좀더 현실적으로 기준을 적절하게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또 기간제 교무 명칭도 조금 생각해 볼 일이다. 기간이 정해져 있어도 굳이 원불교 전무출신 봉직기간을 교무 명칭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는지. 명칭에서 동지애 느낌이 다소 떨어질 수 있고, 한시적인 교무라는 느낌으로 공감대 형성에도 저해요소가 될 수도 있어 더 적절한 명칭은 없는지 생각해본다.

/모스크바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