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윤

올해도 어느덧 다 지나간다. 얼마 남지 않은 달력을 보며 한 해 동안 무엇을 했는가라는 반성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요즘 학교는 추수철 농가처럼 바쁘다. 기말고사 성적처리며 상급학교 진학준비에 정신없다. 일에 묻혀 있다가 고개를 들면 문득 한 해가 간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조금씩 달라지면서 세월이 간다.

숨 한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이 인생이듯 학교에서의 한 생은 3월 개학으로 시작해서 다음해 2월 종업식으로 지나간다. 30년 동안 똑같이 봄이 오고 가을이 가지만 농사짓는 법이 달라지고 농사짓는 사람이 달라지듯 학교도 변해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나 자신같다.

초임시절, 첫 발령을 받은 공고의 학생들은 내 막내 동생과 비슷한 나이대였다. 같이 체육복을 입고 축구를 하고 도시락도 먹었다. 교실에 앉아서 이야기할 때 지나가던 교장선생님이 들어와서 '너는 왜 이렇게 머리가 길어!'하고 등을 쳐서 아이들이 한바탕 웃기도 했다.

그때는 친형처럼 지각을 자주하는 제자의 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가출한 학생이 있으면 물어물어 찾아다녔다. 사회에서 일을 하며 동거까지 하는 경우도 있는데 총각인 담임보다 더 먼저 가장이 되어버린 제자들도 있었다.

10년이 넘어가자 나는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이나 가르치는 법을 내 입장으로만 보게 됐다. 내 생각대로만 하면 다 잘 될 것이라고 여겼다. 비뚤어지거나 내가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되는 쪽으로 기웃거리면 가차 없이 붙들었다. 마치 분재를 기르거나 묘목을 기르는 정원사처럼 가지를 치고 잎을 따고 화분을 옮기듯이 제자들을 대했다.

그러면서 내 아이도 유치원을 지나 초등학교에 진학했고 인문계 고3 담임을 할 때는 아이들에게 삼촌 같은 나이가 됐다. 조카들을 대하듯이 적절히 격려하고 적당히 기다리고, 부모와 함께 의논하며 야단도 치는 중견교사가 되어갔다.

그러다가 교직생활이 20년을 바라볼 때, 학생들은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가 됐다. 그러자 학생들을 보는 눈이 또 달라졌다. 이제까지는 '왜 이것밖에 못하느냐, 나는 너희 때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하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했는데 그때부터는 내 아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조금은 너그러워지기 시작했다.

게임을 하다가 지각하는 학생에게도 '그래, 그럴 수 있지, 우리 집에도 그런 아이가 있어', 공부를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힘들어하면 전에는 내가 더 열 받아서 윽박지르곤 했는데, '그래, 해도 안 될 수 있지, 본인이 얼마나 더 힘들겠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가 이제 30년이 되니 제자의 아이들이 내 앞에 있다. 처음 가르쳤던 제자들이 학부모가 되어 찾아온다. 제자들 중에서 나와 같은 과목의 교사가 된 사람도 여럿이 있으니 제자와 함께 제자들을 만나고 있다.

올해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중학교로 발령 받았다. 교육과정이며 학생들이며 학교의 체계가 고등학교와는 많이 다르다. 마치 벼농사만 30년 짓다가 갑자기 비닐하우스 참외농사를 지으러 나간 기분이랄까? 요즘 학생들의 생활습관이나 사고의 방식은 20~3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있다. 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지만 그 변화의 폭과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고정된 방법과 생각으로는 교사노릇하기가 힘든 세상이다.

올해가 가고나면 또 다른 변화의 내년, 또 다른 학생들을 맞아 한 해 농사를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그렇다. 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옛날타령은 그만하고 또 한 번 다른 봄을 맞아보자.

 /경운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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