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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 칼럼/ 질문할 책임, 답변할 의무가 있다
교무 칼럼/ 질문할 책임, 답변할 의무가 있다
  • 류종원 교무
  • 승인 2017.12.01
  • 호수 18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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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종원 교무/고흥교당
교화침체…행정, 정책, 전략, 일관성 없는 구조적 문제
교무마다 제각각 교화방법과 운영도 발전저해 요인


교화가 오랜 기간 동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60대 이상 교도들이 법회출석을 버텨주고 있는 것이니, 침체기라기보다 수직절벽으로 낙하하고 있다고 말해야 옳은 결론일 것이다. 40대 이하의 교도들이 듬성듬성 법회에 보이는 것은 이를 그대로 증명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대한민국 추세가 종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으며, 우리뿐 아니라 여타의 모든 종교들도 같은 고민을 한다. 거대담론으로 말한다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정부나 기업, 민간단체에서 종교의 영역이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굳이 종교를 찾지 않는 것이다. 과학의 발달로 종교의 논리와 가르침이 굳이 종교시설을 찾지 않아도 압도를 하고 있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여기서 질문을 해보자. 우리 스스로 교화가 안 되게끔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인들은 없는가? 우리 안에 존재하는 교화를 저해하는 요인은 제거하지 않은 채 앞으로의 교화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고름을 짜내고 약을 발라야 병을 치료하는데 무조건 새로운 좋은 약(앞으로의 교당, 정책인사)을 바른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다. 만병통치약(교화단)이 있는데 안 쓴다고 말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선은 교화가 구조적으로 될 수 없는 것부터 바꾸자. 도시화가 진행된 지 30년이 넘었는데, 우리는 농촌교화나 70~80년대식 교화를 답습하거나 방법을 자랑하고 있다. 그때는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말이다. 교화 잘했다는 교무는 많아도, 실패한 교무는 없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농어촌 면단위 교당은 무조건 통폐합 혹은 출장법회로 결정하고, 읍 단위 이상의 도시화와 첨단산업화에 맞춰 승부를 걸도록 우리의 행동양식과 교화방법, 사고를 바꾸자.

최근 10년 사이에 교화행정이 없어진지 오래다. 일관성도 없고, 정책도 없고, 책임성도 없고, 전략도 없다. 대신에 일만 많고, 문서만 많고, 쌓여진 고민만 많고, 일정 속에 회의와 고뇌만 있다.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불합리한 교헌과 교규를 개정하거나, 부족한 법규는 새로 만들면 된다. 그리고 강력하게 헌규 대로 집행하면 된다. 현 시점에서 교헌 개정은 없으니 할 말은 없으나 테두리 내에서라도 적용할 범위를 찾아 가야 할 것이다. 또한 모든 문제는 전무출신에서 찾아야 한다. 교도는 아무 잘못이 없다. 제발 교당에서 교무가 장사를 안했으면 한다. 굳이 한다면 봉공회와 여성회에 맡기거나 하도록 도와는 줘도, 통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저것 주도적으로 팔지 않았으면 한다. 교무 이미지가 고생하고, 돈 벌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는 것으로는 100명 이하의 교화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 이상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 원불교 교무의 이미지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그리고 교도회장단과 교화협의회에 대부분의 교당에 관련한 운영과 권한을 넘겨야 한다. 기껏해야 임기 6년을 보장받으면서 교무 개인의 방식으로 교당을 운영한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있겠는가. 교도가 무슨 잘못인가? 교무들마다 교화방법과 교당운영이 다르다면 누구 때는 교화가 잘되고 누구 때문에 교화가 망쳤다는 전설이 반복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제는 교도들이 싫어하는 것은 그만했으면 한다. 독단적이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교무의 모습을 보이지 말자.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교정원장, 교구장 이상의 교직을 역임한 교무, 또는 퇴임 2~3년을 앞둔 특급지 교당 교무는 의무적으로 5~6급지에서 근무하며 아름다운(?) 퇴임을 하면 어떨까. 한 개인이 계속 기관장이나 정점에서만 머물고 있다 퇴임하지 말고 정말 힘들고 어려운 교당에 내려가 마지막으로 교도들의 세정을 살피고 교도들과 동고동락하며 퇴임하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세부적으로 차근차근 다뤄야 할 문제이나, 혹여 젊은 교무의 패기나 성급한 요구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도 다루지 못한 내용이 많아 아쉽기도 하다.

결국 교화침체는 안되는 요인부터 정확히 진단하고, 그 원인부터 깔끔하게 정리해야 교화성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르고 과감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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