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시 흥해읍 대성아파트가 11월15일 발생한 지진으로 건물이 파손돼 있다. 출입이 통제된 아파트는 곳곳이 무너지고 가재도구들이 나뒹굴어 을씨년스러웠다.
파손된 건물, 피해 복구·보상 국가지원금 지급해야
'사용가능' 안전진단 나온 주택, 주민 불안은 계속
악몽·불면증·지진 트라우마, 원불교 심리치료 지원

지진 발생 보름 만에 찾은 포항시 흥해읍은 차분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어 추위까지 닥치면서 주민보다는 치안과 질서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 병력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폐쇄 결정으로 주민이 떠나 텅 빈 집들은 급하게 짐을 뺀 후 부서진 가재도구와 콘크리트 파편들이 어지럽게 나뒹굴어 큰 재난 앞에 황망할 이재민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어찌해볼 도리 없이 견뎌야 하는 천재지변의 특성상 물리적 피해 못지않게 정신적인 충격도 크다. 흥해읍에서 이재민들을 만나 이번 지진과 관련한 문제들을 듣고 정리해봤다.

현실과 동떨어진 주택 피해 복구지원금

역대 최대 규모 지진이었던 경주지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포항지진의 잠정 피해액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진발생 10여 일 만에 집계된 잠정 피해액은 1000억원을 넘어섰다.

포항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지진 피해는 공공시설, 주택, 공장 등 1천235억원에 이른다. 공공시설은 404건에서 532억 2천300만원의 피해가 났고, 사유시설은 3만878곳이 피해를 봤다. 사유시설 피해의 대부분은 주택으로 피해액은 429억6천만원에 이른다. 장량동 크리스탈 원룸과 블루버드, 흥해읍의 대성아파트와 중앙동의 풀하우스 등은 전파돼 수백 가구 주민들이 이재민 신세로 전락했다. 반파된 주택도 1165가구에 172억2000만원에 달했는데 주로 흥해읍에 집중됐다.

주택피해는 사유재산으로 정부예산으로 전액 보상이 안돼 수천 만원에서 수억 원대의 건물 보수 비용이 필요한 피해 주민들 입장에선 한숨만 나온다. 자연재난에 따른 사유시설 복구지원 기준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복구비용은 대부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주택전파에 대한 지원금은 재난지원금 900만원, 의연금 최대 500만원 등 1400만원에 불과하다. 주택반파는 전파의 50%수준이다. 주택소파는 재난지원금 100만원, 의연금 100만원 등 200만원뿐이다. 실제 경주시는 주택소파 가구에 가구당 100만원을 지원한 게 전부다.

흥해체육관 대피소에서 만난 최 모씨는 "사람이 잠시 출입하는 것도 불안할 정도로 전파됐는데 900만원밖에 지원받을 수 없다니 말문이 막힌다"며 "앞으로 또다시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참에 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용가능' 안전진단, 안전하지 않아

포항시가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거나 벽면 균열 등 심한 피해를 입은 주택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에 대한 반발도 거세다. 대동빌라와 경림뉴소망타운, 대성아파트 D~F동은 사용 불가 판정을 받고 이주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인근 한미장관맨션을 비롯한 한동맨션·봉림빌라 등도 벽에 금이 가거나 잇따른 여진에 건물 자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주민들의 불안은 계속되고 있지만 시는 '사용 가능'이라며 이주대상에서 제외했다.

전문가들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곳인 한미장관맨션에는 외벽에서 떨어지는 콘크리트 가루를 막기 위해 그물망이 설치돼 있다. 흥해체육관 대피소에서 만난 이재민 신옥섭(61)씨는 "정도의 차이일 뿐 조금이라도 센 여진이 온다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라 매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이주 대상에 넣어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한미장관맨션 임시 동대표 김홍제 씨는 "흥해에서 지진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대체로 5층 정도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힘없고 돈없는 서민들이다"며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파손돼 복구 공사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밀진단결과에도 '사용가능'이라고 나온다면 수긍할 수 없을 것이다"고 전했다.

건물의 벽이 갈라지는 등 파손된 상태에서도 '사용가능' 평가가 내려져 피해 주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에 대해 포항시 관계자는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서는 주벽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나 벽체가 안전할 경우 벽돌로 쌓은 벽에 일부 금이 가더라도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어 사용가능 평가를 한다"고 설명하며 "주민 불안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폐쇄조치가 내려진 흥해초 어린이들이 심리 부스를 찾아 지진을 '공포, 불안, 상처' 등으로 표현했다.
부상 치료, 재난지원금 규정 문턱 높아

인명피해도 크다. 의식불명 입원환자 1명을 포함 4명이 중상을 입고 입원 중이며 경상자 88명을 포함 92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북 포항시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모 씨(70·여)는 지난달 15일 지진 때 자신의 집 화장실에 들어선 순간 한쪽 벽이 무너지면서 중상을 입었다. 차상위계층인 김 씨는 치료비 지원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해 불안하다.

부상자들은 '자연재난 구호 및 복구비용 부담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사망·실종자의 50%(250만∼500만 원)에 해당하는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그 기준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신체장애등급 7급 이상이다. '한쪽 눈이 실명되고 다른 쪽 눈의 시력이 0.6 이하가 된 사람' 등 기준이 너무 까다로워 심한 부상을 입어도 자칫 지원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12월1일까지 5명이 재난지원금을 신청했지만 확정된 사람은 아직 없다. 지난해 경주 지진 당시 부상자 18명 중에도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람은 없다.

꼭 필요한 심리지원, 원불교 부스 운영

계속되는 여진으로 지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악몽이나 불면증을 경험하는 이재민들이 늘어나면서 심리치료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재난 초기에 대부분 지진상황이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몸이 긴장돼 있고 피로감을 느끼며 짜증·우울·분노의 감정 등 다양한 심리적 위기를 겪는다.

교단에서는 흥해실내체육관 앞에서 '원불교 지진피해 심리지원단'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원불교재해재난구호대·은혜심기운동본부·원봉공회·전라북도청소년상담복지센터·원불교상담학회가 힘을 합쳐 지진 발생 초기부터 이재민들의 심리치료에 손길을 보태고 있다. 이재민들은 대체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화가 나고 짜증이 많아진다, 멍하고 혼란스럽다, 불안하고 쉽게 놀란다, 눈물이 나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두통·소화불량·어지러움·두근거림 등의 신체 증상'을 겪고 있었다.

이유경 상담사는 "자녀가 보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나서 자책을 하게 된다는 등의 호소를 들으면서 이재민의 고통이 깊어지고 있음을 본다"며 "많은 봉사 부스들이 주로 음식을 제공하는데 반해 원불교에서는 심리지원 부스를 운영해 의미가 크다"고 소감을 전했다.

친구들과 함께 상담부스를 방문한 흥해초등학교 이재성 군(5학년)은 "학교가 많이 부서져 달전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다. 26명 중에서 지진 발생 후에 3명이 다른 도시로 전학 갔다"며 "학교나 스마트폰에서 친구들과 주로 지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직도 많이 무섭다"고 호소했다.

포항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지진이 남긴 상처로 고통받고 있다. 가장 큰 공포는 지진이 또 일어날까 하는 불안이다. 포항 지진은 끝난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