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법실 대종사 영정, 왜 아직도 일본식으로 남겨놓았나
근대일식건물 방치…원불교 미래 이미지 새로 설계해

서울시 뉴욕광고 시안은 찜찜했다. 한복을 입은 여성이 옷고름을 잡고 있다. 한복 바탕에는 광화문광장·경복궁·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서울 주요 관광지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Unforgettable Experience in Seoul(서울에서의 잊을 수 없는 경험).' 그것이 왜 문제란 말인가.

시민들의 질타는 매서웠다. 옷고름을 풀 것 같은 선정적 느낌. 그리고 상상력을 깬 광고 문구. '위안부' 문제 등 아직도 산적한 과거사 앞에 해외로 전파될 한국이미지의 적합성이 문제였다. 시민들은 한국의 글로벌 이미지에 끼칠 젠더(gender)이슈의 모호성에 대한 방어능력을 꼬집은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집요한 생명력. 시민들은 적극적인 참여로 오래된 오늘을 재편하고 있다. 이렇듯 공공 영역은 역사가 지혜다. 애매모호함은 고통을 재현한다. 전쟁역사는 교훈적인 단련이 필요하다. 탁월한 역사의식과 비상한 통찰력. 깊이 있게 다가서는 자세다. 현재와 직접 연결된 과거의 전모를 성공적으로 치유해가는 처방이다. 이렇게 재생된 결단과 행동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따라서 상상공간에서 조차 인권의 반복적 수모를 강력히 저항한다. 그러므로 공공 영역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광고·홍보 이미지는 태생적 한계를 견뎌야한다. 포토라인에서도 흔들림 없는 정직한 단련이 필요한 것이다.

원불교 또한 불가침 영역은 아니다. 교단은 한국 근·현대사를 역사한다. 그래서 한국태생 원불교가 세계주세교단으로 직진할 발군의 기량도 엄밀하다. 고진감래의 근·현대사를 밟아온 연속성과 역동성. 고스란히 원불교의 과거이자 현재진행이다. 시민들은 원한다. 한국 근·현대의 살아있는 역사로써의 원불교의 전통과 오늘을. 원불교 성지를 찾는 순례자 눈높이에는 비전을 갈망하는 시선이 있다.

오랜 불공의 대상이던 여성리더들이 중앙총부를 방문했다. 총부는 교단사와 더불어 특별한 의미가 존재한다. 특별함은 원불교 교도에 익숙한 풍조다. 1924부터 93년간 전법성지의 면모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공간. 그런데 불쑥 그들의 질문이 가슴 깊이 꽂혔다. '왜 한국에 뿌리를 둔 원불교 중앙총부에는 아직도 전통한옥건물이 없는가.', '왜 종법실의 대종사님 영정은 아직도 일본식으로 남겨놓았나.'

보보일체 혼정신성(昏定晨省)이다. 망연자실했다. "아직도"로 시작되는 그들의 지적은 매서웠다. 선진들의 억압과 설욕의 일제강점기 현장. 소리 없는 이미지로 그들이 우리를 포토라인에 세웠다.

유명한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설득의 심리학에서 반향실 효과 (echo chamber effect)를 언급했다. 반향실은 소리를 메아리처럼 울리게 만든 방이다. 무얼 말하든 똑같은 소리만 되돌아온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끼리 모여 비슷한 주장만 극대화하는 확증편향, 일관성 편향적인 인지오류를 지적한 병맥진단이다. 혹여 원불교 교도로서의 익숙함, 친숙함이 원불교이미지의 차별화를 어정쩡하게 무마시키고 있지는 않았는가. 타자의 시선에서 시대를 반영한 총부의 이미지가 애매모호했다.

인류의 순례지가 될 중앙총부의 이미지를 근대일식건물 전시관의 연속선상에서 유추하도록 방치했다. 금강이 현세계(金剛現世界)하니 조선이 갱조선(朝鮮更朝鮮)이라. 소태산 대종사의 "조선은…미비한 점은 앞으로 더욱 발전을 보게 되려니와, 정신적 방면으로는 장차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제일가는 지도국이 될 것이다"란 말씀을 다시 받든다. 어변성룡의 희망로드가 한국이다. 한국과 원불교의 미래는 숙명이다. 정산종사와 대산종사도 한국에 태어나 이 회상 만난 것을 인생의 가장 큰 기쁨으로 밝히셨다. 중앙총부에 전통한국의 이미지를 사상의 깊이만큼 입히자.

세계주세교단으로의 발판에 한국이미지를 전략적으로 부각시켜야함은 명약관화다. 서울시 뉴욕광고 시안을 보는 시민들의 시선에 교단도 귀 기울이자. 역사를 얹힌 노력에서 원불교 미래이미지 설계를 가동하자. 그런 의미에서 중앙원로여자수도원 선진들의 전통한옥양식 건축의 첫 삽은 장대한 서막이다. 출발은 지피지기다. 익숙함과의 작별이 미래로의 결단이자 세계주세교단으로의 의미 있는 행보이다.

/은덕문화원

[2017년 12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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