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7세 팔팔한 청년 시절부터 불혹의 나이가 지난 43세까지 자선원에서 16년간(재가 10년 출가 6년) 혹독한 간사생활을 견뎠다. 그 세월은 나에게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직간접으로 체험하고 인내하며 살게 했다. 자선원은 지금의 나를 존재케 하는 소중한 추억의 시간이기에 늘 감사하다.

자선원 입사 당시 원장님이었던 이수오 종사님의 가르침은 나의 자력생활에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청빈과 마음공부로 참선을 실행하며 정신교육을 담당해 준 이수오 원장님으로부터 4년여 동안 전무출신으로서 언행일치를 실천하는 법을 배웠다. 또한 영육쌍전과 이소성대의 가르침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논으로 밭으로 열심히 생활하다가 일요일이면 법회시간을 통해 원장님으로부터 대종사님 법문을 듣는 일이 참 행복했다. 그러면서 우리 자선원 가족들도 순화가 되고 교화가 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영육쌍전'으로 점점 안정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원장님은 늘 단아하고 맑아서 청아한 난을 닮은 모습이었다. 일마다 경계마다 마음이 요란해지거나 흔들릴 때면 원장님은 손수 빨래하고 청소하고 마당을 쓸고 붓글씨를 썼다. 요란했던 마음과 화냈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옆에서 배웠다.

이수오 원장님의 후임으로 온 김정문 원장님은 교단의 발전과 원불교 사회복지시설의 경제적 자립기반과 자선원의 기반을 닦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시다 과로로 갑작스런 열반을 맞았다. 이 일은 나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이모부인 김정문 원장님의 못다 한 사회복지의 뜻을 이어가리라 다짐을 더욱 굳게 했다. 지나온 세월동안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고 꾸준히 하라 하며 작은 돈을 아껴 모아 크게 써야 한다며 씀씀이가 헤펐던 내게 경제관념을 일깨워 준 분이었다. 당시 혼이 날 때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옥돌을 만들려면 다른 돌보다 정을 많이 맞아야 한다'며 교육시킨 뜻을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후임 원장님인 김조윤 교무님은 앞으로 복지기관에서 참된 주인이 되려면 배워야 한다며 사회복지연수원에 가도록 해 주었다. 6개월 동안 자리를 비우게 되면 농사일은 어찌하나 걱정했지만, 공심으로 일하면 저절로 해결이 되는 법이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그래서 5일은 연수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2일은 시설에 돌아와 못다 한 일을 열심히 했다.

이렇게 서울을 오가는 바쁜 생활을 하며 사회복지사자격증을 취득했다. 참 뿌듯했다.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이 일로 인해 배움에 대한 불씨가 당겨져 원광보건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시작으로, 앞으로의 사회복지는 경영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원광대학교 경영학과를 공부했다.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싶어 원광대 사회복지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주경야독을 하며 실천과 이론을 갖추는 데 노력했다.

전무출신을 서원한 후에는 법회시간과 의식사회를 보면서 조금씩 말하는 연습을 했다. 훈련을 다녀와서는 쉬는 시간이 있거나 운전을 할 때면 독경 운곡을 듣고 익혔다. 언젠가 나에게 기회가 오면 설교를 잘해 보리라는 마음으로 법사님들의 설교집과 사회명사들의 특강을 들으며 거듭 연습했다. 또한 발표력이 부족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나는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기 위해 주말이면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학원비를 내면서 스피치프로그램과 강사교육을 받으며 자신감을 키우고 발표력을 늘려갔다.

만만치 않게 돈이 들었지만 참된 주인이 되려면 배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배움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공부하는 일이라면 두말없이 아낌없이 지원해준 정토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광양시장애인복지관

[2017년 12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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