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9-17 14:30 (화)
교무 칼럼 完. 아주 오래된 새 길
교무 칼럼 完. 아주 오래된 새 길
  • 권은경 교무
  • 승인 2017.12.15
  • 호수 187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말통신> 생생한 기록, 현재의 교단과 내 자신 살펴
서로 독려하고 합력하며 행복한 낙원공동체 이뤄

나에게 익산 총부생활은 교단과 회상에 대한 견해를 넓히고 새로이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아울러, 무아의 표준을 품고 은혜를 되갚으려 모여든 도반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도 큰 힘이 된다. 요즘 나는 몇몇 도반과 〈월말통신〉 읽기 모임을 통해 우리 회상 초창기 공동체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월말통신〉 속 배경이 되는 익산성지와 관련된 부분을 읽어 내려갈 때면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난 기록들이기에 더욱 깊이 빠져든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한국사회는 인심이 크게 어지럽고 세상이 크게 혼란하던 위기의 시대였다. 그러한 시대에 세상의 등불이며 정신적 생명이었던 스승님을 모시고 그 지도 아래 진실한 동지들이 똘똘 뭉쳤다. 서로가 서로를 독려하고 합력하며 행복한 낙원 공동체를 운영했던 그 공간과 그 시간, 그 안에서 생활하는 선진들의 모습이 <월말통신>을 통해 전국에 전해질 때면 서로 찬탄을 하다가 또 어떤 때는 함께 살림살이 걱정을 하곤 했었다.

그 <월말통신>에 나온 내용 가운데 기억이 남는 것이 몇 가지가 있어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불은미(佛恩米)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 아침저녁 전 회원의 집에서 식사에 필요한 곡식의 총량에서 한 사람당 한 숟가락씩을 곡식을 덜어 한 달 동안 저축했다가 예회에 납입하게 한 제도이다. 이렇게 각처에서 모아진 불은미는 상당한 금액이 되면 회원 동지의 공부비용과 승급하는 동지들의 축의금, 그리고 유공 원로들의 봉양을 위해서 사용하거나 비문 역사 발간비, 의료비, 열반비 등으로 충용됐다. 초기 교단의 알뜰했던 절약 정신과 선진들의 공익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둘째는 공경(恭敬)의 예에 관한 이야기다. 원기14년 6월16일 사산 오창건 선진의 의견 제안으로 조회가 처음 시작됐다. 매일 아침 개별적으로 종사주에 문후를 올리는 것을 멈추고 인근 거주자들이 함께 모여 대종사의 금언옥법(金言玉法)을 받들자고 제안한 것이 출발이었다. 예의 번다함을 줄이면서도 공경의 예를 갖추고자 하는 정신이 담겨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대종사가 출타 중일 때도 함께 조실에 모여 묵상으로 문후를 올렸다 하니 지금 우리가 종법실을 지나면서 합장 공경의 예를 올리는 것도 여기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

셋째는 활발한 의견 제안과 기록문화에 관한 이야기다. 경성지부 예회록을 보면 한 회원이 "우리가 예회 날 점심으로 국수를 먹는 것은 비용을 절약하여 조금이라도 저금통에 넣기 위한 것이나 국수를 먹은즉 배가 불편하니 국수 살 돈으로 백미를 사서 죽을 쑤든지 반찬을 절약해서 조금씩 먹고 국수 먹을 때보다 비용은 결코 더 쓰지 맙시다"고 제안하여 실행한 대목이 상세히 나온다. 회원들이 의견을 자유스럽게 개진할 수 있었던 분위기도 감동적이지만, 이처럼 사소한 일들까지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던 혜안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월말통신>을 읽는 동안 얻은 소소한 감동들이 비단 이뿐일까? 당시 총부 교무로 있던 융타원 김영신 선진이 매 예회에 청중의 안목을 사로잡을 연사가 부족함을 유감스럽다 하고, 고정 연사가 혹 병고나 사고로 불참할 때는 연사가 없어 곤란을 겪을 때가 많으니 자격을 갖춘 자를 선택해 교육시켜 연사로 충용하자는 의견을 제안했다. 이 대목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일요예회 설교나 경강자 발굴 및 섭외에 어려움을 겪는 상주선원의 교무로서의 나의 모습이 겹치면서 법회운영 형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됐다.

〈월말통신〉 일기모임은 이렇듯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고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은혜로 현재의 교단이 있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변모와 발전을 해왔는지 선진들이 살아온 길을 되짚어보고, 현재의 교단과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교훈을 얻고 미래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다.

이번 한 주도 해묵은 <월말통신>을 꺼내들며 만고의 일월과 성신이 될 것을 뜨겁게 각오했을 대종사와 오직 대종사를 믿고 험한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고 한길로 걸어갔을 선진들의 곁으로 잠시나마 시간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한 해의 끝자락과 새해의 첫 자락 사이를 거닐며 대종사와 선진들을 마음 깊이 추모해 본다.

/중앙상주선원

[2017년 12월 15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