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보]창간에 즈음하여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 萬有에 달마가 있었다. 인류 앞에 길이 있었다. 로고스와 달라와 길 우리는 그 길을 眞理라고 일컫는다.


인간이 알고 배우고 실천해야 할 하느님의 말씀, 인류가 등불처럼 의지하고 지팡이처럼 기대어야 할 부처님의 말씀, 모든 사람이 걸어가야 할 人生의 大道, 분명히 그전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肉眼으로 볼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길이다. 그것은 肉의 귀로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니다. 마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말씀이다. 그것은 더러운 마음으로 이해되는 뜻이 아니다.  맑은 良心을 가지는 者만이 그 뜻을 이해한다. 그것은 교만한者 앞에는 닫혀진 門이다. 겸허한 자에게만 그 문이  열려진다.


누구든지 이 진리의 향연에 참여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절한 者, 진실한 자, 겸손한 자만이 이 진리의 향연에 참여한다.


눈이 있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요 귀가 있다고 들리는 것이 아니요 가슴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볼 줄 아는 눈을 가진자 만이 볼 수 있고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자만이 들을 수 있고 느낄 줄 아는 가슴을 가진자 만이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줄 아는 머리를 가진 자만이 생각할 수 있다.


인류 중에서 위대한 스승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큰 눈, 큰 귀, 큰 머리, 큰마음을 가진 분들이었다. 그 눈, 그 귀, 그 가슴, 그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고 만유의 달마를 깨달았고, 人類의 道를 알았다.
그 어른들은 求道의 정열이 강했다. 진리의 감각이 비상했다. 석가, 예수, 공자, 마호멧트, 소크라테스 모두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다.


그들은 인류의 선각자요 正覺者요 大覺者요 圓覺者다. 그 깨달음의 내용과 체계를 우리는 宗敎라고 일컫는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란 무엇이며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을 대할 때에는 어떠한 마음으로 대하며 존재 앞에 설 때에는 어떤 자세로 서야하느냐, 무엇이 인생의 참 목적이며 참 행복이며 참 가치인가, 우리는 어떠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냐, 그들은 이러한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 대답했다. 그것은 으뜸가는 가르침이요 根本的인 가르침이다. 그래서 우리는 宗敎라고 칭한다. 宗敎의 宗은 으뜸과 根本이란 뜻이요, 敎는 가르침이다.


이 위대한 인류의 스승들은 우리에게 진리의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행하고 실천하셨다. 그들의 人格은 眞理의 結晶이요, 그들의 생활은 진리의 실천이었다. 그들은 진리 속에 있었고 진리는 그들 속에 있었다.


현대인은 바쁘고 현대사회는 복잡해졌다. 현대는 종교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특히 오늘의 한국인은 無思想 無信仰 無宗敎속에서 아무렇게나 살아간다. 思考의 높이를 잃었다. 생활의 깊이를 상실했다. 행동의 방향을 잃었고 정신의 좌표를 상실했다. 모두 낮게 생각하고 낮게 행동하고 낮게 생활한다. 모두 옅은 생각 옅은 행동 옅은 생활 옅은 인격의 次元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속 사람은 없고 겉 사람만 있다. 정신은 행방불명이 되고 물질만 좌왕 우왕한다.


人格에서 物格으로 전락했다. 靈은 죽고 肉만 남았다. 참사람은 만나기 힘들고 거짓사람만 만나게 된다. 이것이 한국의 精神的 狀況의 숨김없는 진단이다. 우리는 겉은 성한데 속은 병들었다. 外部는 화려하고 內部는 虛弱하다. 靈魂의 고향상실이다. 인격의 자기 상실이다. 사람이 사람답지 않다. 人間의 非人間化의  危機的 상황이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길을 구하고 달마를 찾아야 한다. 인류의 큰 어른들이 옛날에 하신 생명의 말씀과 진리의 로고스를 다시 듣고 다시 배우고 다시 생각해야겠다.


그 말씀은 한없이 오래면서 언제나 새로운 말씀이다. 진리에는 연령이 없다. 그것은 時空을 초월한 永遠의 생명을 가진 말씀이다.


孔子는 溫故知新이라 했다. 우리는 옛것을 새時代에 살려야 한다.


오늘날 종교는 새로운 메쎄지를 가지고 나타나야 한다. 새로운 피리를 불고 새로운 法論을 굴려야 한다. 평화의 메쎄지를, 奉仕의 메쎄지, 사랑의 메쎄지를, 자유의 메쎄지를, 正義의 메쎄지를 행복의 메쎄지를 전파해야 한다.


현대는 매스콤과 져널리즘의 시대다. 매스콤과 져널리즘이라는 현대의 새로운 道具와 방법을 가지고 새로운 希望과 決斷과 용기의 메쎄지를 宗敎는 전해야 한다.


어디선가 한줄기의 밝은 빛이 솟아야겠다. 청신한 바람이 불어야겠다. 맑은 샘이 솟아야겠다.


圓佛敎는 한국의 革新佛敎에 속한다. 그것은 佛敎의 현대화와 생활화와 대중화를 기도한 새時代의 새宗敎다. 無時禪과 無處禪의 방법에 입각해서 事事佛供과 處處佛像의 原理를 생활 속에 실천하자는 생활종교다.


우리는 開放社會의 개방적 인간으로서 開放的 生活속에서 살아간다. 현대의 종교는 개방사회에 적응하는 종교라야 한다. 자기를 절대화하는 獨善과 바깥 세계와 담을 쌓는 폐쇄성과 타종교를 寬容하지 못하는 배타성의 좁은 울타리를 고집하고 자기를 偶像化한다면 현대의 종교가 될 수 없고 현대의 새로운 메쎄지를 전파할 수 없다.


종교는 새로워져야 한다. 전파하는 메쎄지의 내용도 새로워져야 하고 메쎄지를 전파하는 방식도 새로워져야 한다.


圓佛敎의 根本原理의 하나인 以小成大의 精神으로 새로운 메쎄지를 점차 韓國社會에 크게 전파하기를 기대한다.

安炳煜 (숭실대 교수)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