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연기 압박감 커 교도들과 호흡 너무 좋아 부족한 연기 채워줘
원불교 안에서 누군가 사고 쳐야 바뀐다 문화 기획자 양성 절실
문화는 관념 아닌 체험 공연예술 교당 안으로 끌어들이는 안목 필요

[원불교신문=나세윤] 지난달 12일 영광교구를 마지막으로 '이 일을 어찌할꼬!' 전국순회 공연이 마무리됐다. 문화게릴라 이윤택 연출가가 작업한 이번 소태산 서사극은 교도와 일반인들의 관람으로 원불교 연극의 대중화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다. 연기자로 열연했던 배우들을 문화사회부가 초청, 그들이 접한 교단과 소태산, 그리고 연기 뒤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문화사회부 접견실에서 진행된 좌담회는 총괄 진행과 사타원 이원화를 연기한 김미숙 배우와 후반부 소태산 대종사를 연기한 이원희 배우, 황순사를 연기한 김계원 도무, 이명아 문화사회부 차장이 함께했다.

소태산 대종사를 연기한 이원희 배우.

- 첫 대본을 받은 느낌이 어땠나.
미숙= 이윤택 연출가가 처음 건넨 대본은 60쪽짜리였다. 이 정도면 4시간 분량의 연극인데, 다시 다듬어 3시간 분량으로 정리해 주셨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번 연극을 통해 처음 접했고, 초기 교단 공동체를 공부하면서 우리 밀양연극촌의 공동체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꼈다. 소태산이 대각을 향해 몸부림칠 때의 심정과 연극촌에서 공동 숙식하는 우리들의 삶이 오버랩 되면서 종교와 연극이 달라 보이지 않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번 연극은 큰 수술 후 10일 만에 합류라 건강을 먼저 돌봐야 할 처지였지만 대본을 본 뒤에는 꼭 해야 할 연극이라는 확신이 섰다.
원희= 첫 대본은 다른 공연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 받았다. 책 2권을 받았는데, 그때의 내 심정은 제목 그대로 '이 일을 어찌할꼬'였다. 전혀 모르는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막막함에 익산 중앙총부 안내실로 전화를 걸었다. 소태산 연극을 하게 된 배우라고 소개했더니 영산성지를 추천해 줬다. 영산성지를 순례하면서 대본을 처음 읽었는데 너무 힘들고 읽혀지지 않았다. 문장이 내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당연했다. 내 삶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산 성자를 연기한다는 것이 녹록치 않았는데, 함께했던 김계원 도무가 도움을 많이 줬다.
계원= 보통 다른 연극단체들은 한 작품을 위해 모였다가 끝나면 흩어진다. 그런데 연희단거리패는 원불교 교단 창립 때처럼  그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다. 공동체에서 연기 연습하는 것도 좋았지만 아침마다 열리는 이윤택 연출가의 조회시간이 너무 인상 깊었다.
연기에 대한 동기부여를 비롯한 치열한 연극의 세계, 특히 '원불교 안에서 누군가는 사고를 쳐야 합니다'라는 조언은 아직도 생생히 뇌리에 남아 연극인생의 좌표가 됐다. 연기는 물론 배우들과 좋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고, 멈춰있던 내 안의 연극 에너지를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연기 연습에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계원= 사실 두 사람은 연기 베테랑이다. 삼동인터내셔널 도무로 근무하면서 연극계를 떠나 있다가 다시 연기를 하려니 감이 안 잡혔다. 이윤택 연출가가 첫 공연을 앞두고 '무대에 못 올라갈 수 있다'는 협박성 경고를 할 정도였다. 준비된 자가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연극계의 생리를 알기 때문에 나름 스트레스가 많았다. 두 배우가 내 머리 끄댕이(?)를 잡아서 훈련을 많이 시켜줬다. (웃음)
미숙= 사타원 이원화 연기 말고, 전체적인 해설과 진행을 맡았다. 연습을 하거나 지도를 할 때는 내가 악마가 된다고 단원들은 이야기한다. 그만큼 배우들을 다그친다. 연기 연습을 총괄하고, 음악, 무대 등을 다 챙겨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무대와 배우들의 기량이 올라왔을 때 제작자가 아닌 연기자로 돌아간다. 26년째 연기를 하고 있지만 연극은 라이브다. 그날의 컨디션, 연기 상대, 관객이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온다.
원희= 소태산 대종사를 '대각' 전과 후로 2명의 연기자가 연기를 했다. 윤정섭 배우가 전반부 구도 연기를 너무 아름답게 해내면서 내가 이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참 고민이 많았다. 첫 공연이 오를 때에도 수정 보완했고, 지방순회 공연을 하면서도 조금씩 변화를 줬다. 어차피 내가 맡은 배역이기 때문에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지 않는가. 그래서 첫 공연이 두려웠지만 차츰 관객들과 호흡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를 할 수 있었다. 

황순사를 연기한 김계원 도무.

- 맡은 배역에서 부담감은 없었나.
원희= 압박감과 부담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리허설을 끝내고 너무 무서웠고, 내 연기가 두려웠다. 이유는 내가 연기한 성자 소태산이 사이비교주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감정이 예민해 졌지만, '아 그러면 안 되는데, 절대 안 되는데' 되뇌며 내 연기를 성찰했다. 연기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연기한 소태산에 대한 확신의 문제였다. 가장 큰 도움은 공연을 찾아 준 관객들의 호응이었고, 교도들의 눈빛이 잡생각을 사라지게 했다. 이런 교감이 나를 소태산의 언어와 삶 속으로 편안하게 들어가게 했다. 부족한 연기를 관객들이 채워줘서 참 다행이었다.
미숙= 사타원의 내용은 첫 대본보다 수위조절을 해 많이 뺐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을 연기하려니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바랭이네가 귀영바위에서 소태산의 대각을 바라며 '신묘생~~' 기도하는 장면이 참 좋더라. 거짓꼴로 사는 소태산을 위해, 오직 사심 없이, 계산 없이 열심히 기도하고 헌신한 모습에 끌렸다. 이런 연기는 스스로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 뒤에 큰 신 할머니가 배경이 돼 밀어주는 느낌이랄까. 판타지를 좋아하는데, 실제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보면 배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무언가의 기를 경험하게 된다. 소태산의 대각을 바라는 바랭이네의 그 간절한 염원이 관객들의 바람이 되도록 연기에 몰입했다.
계원= 첫 공연 때 혈인법인상 씬에서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많이 안 나왔다. 배우들 간의 호흡과 에너지가 통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순회공연을 거듭하면서 이 부분이 보완됐고 막판에는 저절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더라. 내가 맡은 사산 오창건 선진의 대사는 한마디도 없었다. 다만 황 순사(황이천 선진)를 연기했는데 내가 너무 캐릭터화 시키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극 말미에 황 순사의 비중이 커서 극의 전체적인 흐름 때문에 그런 부분이 있었다. 연습 전 선진님의 따님인 황명신 교무님을 만나 인물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지만, 선진님을 최대한 드러내지 못했고 내가 너무 편한 연기를 선택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바랭이네를 연기한 김미숙 배우.

- 어느 공연이 가장 뜨거웠나.
미숙= 익산 첫 공연이 대단했다. 좌산상사님과 경산종법사님 그리고 원로 교무님들이 맨 앞에 자리를 잡아, 관객들의 아우라가 끝내줬다. 영광의 마지막 무대도 잊을 수 없다. 이선조 영광교구장이 공연이 끝나자 무대에 올라와 '이제 안아 줄 때가 됐다.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왜 우리가 바랭이네를 숨겨야 하느냐'며 나를 꼭 안아줬다.
원희= 같은 생각이다. 그날 공연에 온 관객들의 내공이 워낙 막강했다. 흔치 않는 무대여서 그런지 내가 치는 대사가 배우들과의 대화가 아니라 관객석으로 나가더라. '우리 불법연구회에서는 사람을 가려 받지 않네. 혹시 저희들은 가려 받느냐' 이런 대사를 관객들에게 막 던졌다. 원래 종법사님이 무대에 안 올라오기로 했는데 연출가와 배우, 관객들이 함께 무대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 원불교 예술 공연 발전에 제언한다면.
계원= 순회공연을 통해 교도들이 공연문화에 목말라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기2세기를 맞아 다양한 문화예술에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문화 여건이 너무 열악하다. 연기를 하면서 느낀 점은 연출가의 힘이다. 기획·제작·배우·무대설치 등 문화예술을 조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기획자(전체 큰 그림)들이 많이 배출돼야 원불교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연극계 숨은 인재들을 만났고, 이 만남이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당에서도 작지만 문화교화, 문화인재 투자에 세심한 관심을 가져달라.
미숙= 좋은 작품은 단발로 끝나서는 안된다. 문화예술은 관념이 아닌 체험이고, 활발한 참여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한다. 배우들이 이번 연극을 통해 원불교 교리를 알았다기보다는 통으로 좋은 느낌을 듬뿍 받았다. 우리가 만든 '이 일을 어찌할꼬!' 연극을 현장 교당에서 올리는 작업들이 꼭 필요하다. 전체가 아니고 필요한 장면 장면만 골라서 해도 괜찮다. 결국 문화가 교당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문화적 마인드가 절실하다.

[2017년 12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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