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이 가장 꺼려했다던 '독선기신'은 〈맹자〉 진심장의 '곤궁해지면 홀로 자신을 잘 지키고, 영달하면 천하를 더불어 구제한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에서 유래했다. 이는 사회진출이나 벼슬길에 오르게 되면 천하를 위해 힘쓰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홀로 선을 행하면서 자신을 수양한다는 유가 선비들의 삶 철학과 방식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러한 의미의 '독선'이 부정적 의미로 변하게 된 이유가 편수(編修) 결과라는 사실이다. 조선시대는 유가나 불가 모두 편벽의 역사였다. 유가는 조선을 500년이나 독점하면서 영달의 길만 걸었고, 불가는 500년 동안 배척받으면서 곤궁한 시절을 보냈다.

한쪽 방식을 잃어버린 채 지속된 세월은 모두가 독선의 길로 걸을 수 밖에 없게 했다. 유가는 유가의 독선에 사로잡혔다가 근대적 시대 흐름을 놓쳐버렸고, 불가는 곤궁의 독선에 사로잡혔다가 불법의 참된 가치를 잃어버렸다.

소태산은 독선에 사로잡혀 잘못된 관습으로 찌든 조선불교 혁신을 단행한다.

그는 "묵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공부를 하려면 고요한 산중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며, 혹은 경전·강연·회화는 쓸 데 없고 염불·좌선만 해야 한다고 하여, (중략) 만일 세상을 떠나서 법을 구하며 인도를 여의고 신통만 바란다면 이는 곧 사도니라. 그런즉, 그대들은 먼저 나의 가르치는 바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에 따라 세간 가운데서 공부를 잘 하여 나아가라"고 했다.

그렇다. 처처불상, 무시선, 불법활용, 무아봉공 등은 단순한 불법이 아니었다. 모두 인도상요법을 주체 삼은 불법이었다. 이는 그동안 '궁즉독신기선'에만 머물던 편벽된 불법을 '달즉겸선천하'까지 포괄하는 원만한 불법으로 되살려 놓은 대혁신이었다.

[2017년 12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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