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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과 〈정전〉 47. 현대문명과 사리연구
현대문명과 〈정전〉 47. 현대문명과 사리연구
  • 원익선 교무
  • 승인 2018.01.12
  • 호수 18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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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위기의 현대문명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개인은 물론 집단적인 탐진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첫째는 자본주의의 질주로 인해 자원을 무한대로 착취하고 있는 욕망의 자동화, 둘째는 이념의 차이, 이해관계, 차별과 무시로 인한 반문명적인 분열과 전쟁, 셋째는 이러한 욕망과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는 대중매체의 무지의 재생산에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러한 현대사회를 꿰뚫어 보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고 한 것이다. 새로운 문명에 대한 종래의 패러다임이 한계에 달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새로운 지혜로써 현실을 통찰할 것을 주장했다. 사리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사는 인간사를 말하며, 이는 우주의 근본원리를 말한다. 이원적인 구분법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을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나아 갈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사리연구에서 사는 시비이해로, 이는 대소유무로 구성된다. 사리연구의 최종 지점은 〈대종경〉 불지품의 말씀처럼 영통, 도통, 법통이다. 영통은 천지 만물의 변태와 인간의 삼세 인과보응을 여실히 아는 것, 도통은 천조의 대소유무와 인간의 시비이해에 능통하는 것, 법통은 이 양자를 밝혀서 모든 중생이 받들어 실천할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법통은 대원정각을 거쳐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 말씀은 일원상 진리인 진공과 묘유와 인과의 세계에 통달하여 활용자재하는 대각도인의 경지를 말한다. 

대소유무는 본체와 현상을 의미하는 대소, 그리고 천지와 인간의 변화를 의미하는 유무로 이뤄져 있다. 대소의 관계는 〈육조단경〉에서 유무, 범성, 대소 등 이원적인 세계관이 서로 짝을 이뤄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이도상인(二道相因)의 논리와도 같다. 또한 〈대승기신론〉의 진여문과 생멸문과의 관계와도 같다. 

유무의 변화는 석가모니불이 설한 제행무상과도 통한다. 원불교의 가르침은 정산종사가 〈정산종사법어〉 경의편 36장에서 설하듯이 대소유무의 원리를 따라 구성되고 실천 또한 이에 따른다. 일원상의 종지는 대, 사은의 내역은 소, 인과와 계율 등은 유무 자리에 의거한 것이며, 일심은 대, 보은불공은 소, 마음의 활용을 통한 만사성공은 유무운용에 따른 것이다. 시비이해는 인과에 따른 고락과 정사(正邪)를 바르게 판단하여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다.

주자(朱子)는 불교가 존재론적인 측면인 소이연(所以然)을 밝히고 가치적 측면인 소당연(所當然)의 측면에는 어둡다고 비판한다. 사실 원불교가 종래의 불법을 비판한 것과도 상통한다. 사실 불교만이 아니라 본래의 목적 또는 교조의 가르침을 상실한 모든 종교에도 해당된다. 이 시비이해의 지혜는 원불교가 현대불교이자 종교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의 문제는 가치에 대한 인간의 판단이 흐려진 것에 있다. 거기에는 과거에 종교가 형이상학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것에도 책임이 있다. 소태산이 우주의 진리를 잡아다가 인간의 육근에 활용하는 사람이 곧 천인, 성인, 부처라고 한 뜻이 여기에 있다. 인도정의에 입각하여 인류 모두의 이익을 가져오는 공공의 선업을 확립하는 것이 바로 사리연구의 근본 뜻인 것이다. 성리를 밝혀 활용하는 인간학을 새롭게 세워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8년 1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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