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착사상 기행사진전, 3월31일까지 신동엽문학관
보은의 마음으로 후천개벽 사상 계보 잇는 여정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서른아홉, 짧은 생애를 살다간 신동엽의 시. 여기에서부터 그의 한국 토착사상 기행은 시작됐다. 

원불교출판사 천지은(속명 지연·남중교당)편집장. 그는 "무너진 폐허에서 '하늘'을 보려고 생애를 바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신동엽의 시집에서 다시 발견했다"고 말했다. 사상은 폐허의 하늘 그 붉게 뿌려지는 노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는 그. 그는 신동엽의 이 질문과 함께 이 땅의 토착사상을 찾아 카메라를 메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그 녹록지 않은 결과물을 '사진으로 만나는 한국토착사상 기행, 천지연 사진전'에 담아냈다.

그와 함께 사진전이 진행 중인 부여 신동엽문학관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 겨울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된다. "정도상 작가님과 노마드개성교당을 통해 문학하는 새로운 인연들을 알게 되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풍경마다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풍경을 풍경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상처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1년 전, 그는 부여 신동엽문학관 관장인 김형수 작가로부터 "한국토착사상을 사진으로 찍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덜컥' 해보겠노라고 했던 스스로의 다짐은 점점 무거운 숙제가 됐다. 그는 사실 '한국 토착사상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공부를 깊이 해본 적'도 없었다. 

"먼저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수운 최제우에서부터 소태산에 이르는 한국 토착사상 계보를 익히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사상의 깊이에 가닿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사상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깊은 고민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았다고 그는 고백했다. 

그는 정직하기로 했다. "이번 카메라 기행이 예술사진을 촬영하는 기행이 아니라, 한국 토착사상의 현장을 기록하는 기행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기로 했다. 사실주의 입장에서 사상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널리 퍼져나간 현장을 기록하기로 했다. 더구나 그 현장들이란 예술을 할 수 있는 풍경이며 정취를 가진 곳도 아니었다. 쓸쓸하고 초라한 사상의 거처 앞에서 다만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사진전은 수운 최제우, 일부 김항, 증산 강일순, 소태산 박중빈의 토착사상 거처를 담고 있다.

토착사상의 현장을 기록하는 그의 기행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에서 시작해 경주의 수운 최제우, 논산의 일부 김항, 김제의 증산 강일순, 영광과 익산의 소태산 박중빈까지 이어졌다. 후천개벽 사상의 계보를 잇는 여정인 것이다. 

"그저 정직하게 렌즈를 갖다 대고 셔터를 누르는 것으로 후천개벽 사상과 만났다. 사상이 태어나고 펼쳐진 현장이란 대단하지도 별스럽지도 않은 그런 일상의 공간들로 채워져 있다. 특별한 카메라 기법으로 사상의 거처들을 현혹해 담아내고 싶지 않았다." 성인들이 살았던 공간을 기록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그들 앞에 정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이번 기행을 하면서 스스로 거듭 다짐했다.

그렇게 그가 정직하게 담아낸 소태산 박중빈의 후천개벽 사상, 그 현장은 어디일까 궁금했다. 그의 앵글은 삼령기원상이 탄생한 곳, 삼밭재 마당바위와 삼령정사에서부터 초점이 맞춰졌다. 주변에 소태산이 사용했던 우물 영산정과 직접 가꾼 소나무 숲이 있는 영산 대각전 내부, 유년시절을 보내며 '하늘을 보고 의문을 품은' 관천기의상의 배경이 되는 생가도 그의 사진에서 빛을 발했다. 익산총부와 대각전, 종법실, 공회당도 한지 인화의 다소 거친 느낌이 더해져 비로소 작품이 됐다. 

전시관 안쪽, 이번 사진전을 기획하게 된 김형수 작가의 말이 그의 사진과 잘 어우러져 있다. "신동엽이 주목했던 후천개벽의 사상적 행로를 천지은 선생이 더듬어가며 찍었다. 이 전시장면들과 신동엽의 시적 이미지들이 부디 한국 토착사상사의 흥망성쇠를 오늘의 자리에서 되돌아보게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최선을 다했다"는 천지은 편집장. 원불교에 보은하는 마음 그대로를 담아낸 사진전, 한국토착사상의 거처를 담은 그의 전시는 3월 31일까지 부여 신동엽문학관에서 진행 중이다. 

[2018년 1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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