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 교도 / 강북교당

학생시절 나는 미술시간이 두려웠다.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타고난 손재주가 없는데다 미술시간에 나에게 요구하는 대로 작품을 만드는 것에 나 스스로를 너무 옭아매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 시키시는 곧이곧대로 하려다 보니 더 잘 안 되는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석고상 소묘그리기 수행평가를 했던 거 같은데 나에겐 정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용을 써가며 겨우 그렸는데 미술 선생님이 로봇 태권브이냐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석고상은 아그리파라는 인물이었다.

그림에 대한 학창시절의 결핍 때문인지 얼마 전부터 나는 그림이나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이해하기 쉬운 것 위주로 그림에 관한 다양한 책을 사보고 전시회장을 찾아다니며 그림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 다행스럽게도 딸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해 틈만 나면 아무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는데 요즘은 제법 물감으로 수채화를 그리는 것이 참 예뻐 보였다. 그림을 놀이처럼 하니 엄마인 나에게 같이 하자고 여러 번 제안했었는데 그저 잘한다고만 해주다 얼마 전부터 같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재미가 있는 것이 취미생활이 되어줄 것 같았다. 그래서 딸아이와 화방에 가서 수채화 전용 스케치북도 사고 수채화 그리기 초보용 책도 사서 하루에 하나씩 그려보고 있다.

그러던 중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제목에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었는데 일단 표지의 그림이 정말 예뻤다. 눈이 하얗게 내린 시골 마을에 아이들은 썰매를 타고 지붕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그림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할머니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화가이다. 1860년생인 모지스 할머니는 가정부로, 농장의 일꾼으로 살며 10명의 자녀를 출산했는데 5명을 잃게 된다. 그런 삶 속에서 관절염으로 자수가 어려워지자 76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한 번도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었지만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할머니였기에 정겨운 마을 풍경과 사람들 사이의 정이 흐르는 그림들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할머니의 그림은 어느 수집가의 눈에 띄게 되어 세상에 공개됐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줬다.

그 결과 88세의 나이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됐고 93세에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100세가 되는 해에는 그녀의 생일이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됐다. 모지스 할머니는 101세에 돌아가시기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 사람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었다. 이 책에는 할머니의 이야기와 그림이 실려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할머니의 그림에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림을 그릴수록 색채는 더 밝아지고 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림을 통해 점점 더 삶을 긍정하고 즐겼으리라 생각해 봤다. 

누구나 너무 늦었다고 이야기하며 삶에 소홀해질 때 할머니는 그때에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닭을 키웠을 거라고 하며 나이가 들었다고 하여 누군가 나를 도와줄 것을 기대하며 흔들의자에 앉아있지는 못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자신의 삶에 대해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한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다.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거다.'라는 말을 남겼다. 

누구보다 평범하고 소소한 삶을 살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로 최고의 삶을 만든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과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나도 조금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도 경산종법사님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신년법문을 내려줬다. 모지스 할머니처럼 나를 이기는 훈련으로 대자유인이 되고 매사에 은혜를 발견하는 대보은인, 낙원 세계를 개척하는 대불공인이 되어야겠다.

[2018년 1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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