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진수 교무]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는 나름의 의식이 있듯이 마음 맑히는 차 한 잔과 향을 사르는 것은 어떨까. 

향은 종교적 혹은 의례적 의미가 강하지만 몸과 정신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화장수가 되고 유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지식인에게 있어 향은 현실과 유토피아의 세계를 연결시키는 매개체로 인식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아침에 일어나 대문을 열면서 걱정해야 하는 7가지 중요한 일이라는 뜻으로, '개문칠건사(開門七件事)'라는 말을 했다. 여기서 7가지 문제란 땔감, 쌀, 차, 기름, 간장, 소금, 식초 등의 생활필수품을 가리킨다. 송대(960~1279)에는 '개문팔건사(開門八件事)'라는 말이 생겨났다. 여기서 여덟 번째 일이란 바로 향을 피우는 것을 말한다. 

향을 피우는 것은 송대 선비들에게 있어 일종의 삶을 즐기는 방법으로 생활의 일부분이 됐으며 거의 중독될 정도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향은 사대부나 문인들의 생활에서 필수적인 기호품으로 달빛 아래서 침향을 태우거나 낮잠을 청할 때도 피웠다. 

향을 선물하거나 향을 품평하는 것은 송·원시기 시문에서 흔히 보이는 화제였으며 일상생활 가운데 선의(禪意)를 추구하는 것은 송·원시기 사대부 분향의 목적이자 일종의 치료의 방식이기도 했다. 송·원 시기 문인 사대부가 책방에서 홀로 향을 피우는 것은 생활의 여유로 여겨졌으며 나아가 이상향의 세계를 추구하고자 함이었다. 이에 따라 향을 피울 때 쓰는 아름다운 향 도구로 책방을 장식하는 것은 자연히 사대부들의 고상한 취미가 되었다. 방안 혹은 거실 안에 향로, 향합, 꽃병은 꼭 갖고 싶어 하는 장식품이었다. 

송대 선비들에게 향을 피우는 것은 일종의 삶을 즐기는 방법으로 거의 중독될 정도로 영향을 미쳤다.

중국 사대부의 분향이 마음 가는 대로 멋스럽게 수양된 정서라고 한다면 일본의 향도(香道)는 엄격한 의식과 규범에서 정신과 의지를 단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송·원시기의 향 문화는 한국의 고려와 일본의 가마쿠라로 전파됐으며 각국의 심미관과 결합하여 독자적인 향 문화를 형성하게 됐다. 고려의 향 문화는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국가적인 불교행사와 의례에 향을 피우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 되었으며 귀족들의 개인 생활 속에도 향유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고려는 우수한 청자향로, 향합 등을 생산하여 향 문화의 수요에 대처했으며 중국의 송으로부터는 백자 향 그릇을 사들여 다양한 수요에 대처하는 등 독자적인 향 문화를 이끌어갔다. 송나라가 특별히 사신을 통해 선물로 침향을 보냈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과 고려 문종 때 송나라에 요구한 약재 목록 가운데 침향이 제일 처음 등장한다. 서긍(徐兢,1091~1153)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의 향 문화를 찾아볼 수 있는 근거 자료가 있는데, 향의 종류에 대한 기록으로 은으로 만든 향로를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불교가 유입되면서 종교적인 행사로 향을 사용하다가 헤이안 시기에는 왕실을 중심으로 옷에 연기를 쏘이는 훈물(薰物)을 즐겼다. 이후에는 향 문화를 하나의 문향(聞香)이라는 유희로 발전시켰고 장식미를 추구해 나아가 향도를 이루게 됐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 교수

[2018년 1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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