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감춘 전통염색과 토종 쪽 씨앗 농사 복원
온 곳과 가는 곳 훤히 알아야 진정한 '쟁이'

발품과 손끝으로 되살린 전통염색과 쪽빛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우리 시대 으뜸가는 염색쟁이 한광석 명장(법명 성호). 그를 만난 것은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로, 보성 문덕분교였던 자리에 염색 천과 달항아리 등 예술을 덧입힌 곳이다. 너무 많은 관심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도망왔다"지만 그래봐야 역시 보성땅, 나고 자란 곳에서 만난 그는 더욱 여유롭고 선명했다.

10여 년전 들어온 그이는 이 공간을 밝고 둥글고 따스한 것들로 채워왔다. 먼저 눈을 붙드는 '갤러리re'의 '여자나이환갑'전은 이 땅의 아내이자 엄마, 직업인으로서의 여성의 삶을 돌아보는 전시다. 아직도 요원한 남녀평등을 위한 문화적 시도로, 대한민국에서 여자나이 환갑의 의미를 되묻는 화두를 던졌다.

이 같이 시대를 읽는 눈과 깡깡하니 우뚝 선 실력을 세상에 내보인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첫 전시는 우리 옛 것 그대로를 깨워냈다는 데서 일대 파란이었다. 세상에서 이미 사라졌던 전통염색과 토종 쪽을 세상에 다시 모셔온 한광석 명장. 그이는 염색쟁이이자 농부, 또한 학자였으니, 〈규합총서〉,  〈조선복식사〉등 전통염색 내용 한줄한줄에 기어이 매달려왔다. 

"쪽빛 외에도 홍화와 소목, 황련, 황백나무 등 남도 들녘에서 채취한 염료로 여러 빛을 냅니다. 다만 쪽빛은 재료나 색감, 작업 방식까지 전통염색을 가장 잘 담아낸 색이지요."

지금도 쪽을 직접 짓는 그이는 농사에도 대강이 없다. 파종부터 수확, 잿물과 석회, 색소를 만들고 물발을 세워 들이는 모든 찰나가 다 그의 눈과 손이다. 40여년 전 염색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여기저기 떠돌던 그를 삼촌 한창기 선생이 물과 천 앞에 세웠다. 

"듣자하니 고향에 살며, 멋있기도 하고 돈도 많이 벌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화학염료 일색이라 배울 데도, 스승도 없었습니다. 염색은 '쌍것'들 일이라던 반대도 있었지요."

그러나 가슴에 이미 쪽씨가 심어진 젊은 한광석을 말릴 수는 없었다. 더구나 삼촌은 전통과 한글을 널리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친 이로, 누가 알아주지 않는 길을 걸어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에까지 왔다. 고집은 조카도 못지 않았다. 염색하는 사람, 무명 짓는 사람, 바람결 소문도 귀하게 찾아가 만났다. 이윽고 그이는 토종 쪽씨 한 줌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통을 살려낸 것은 바로 그 손이었다.        

"물만 잘 들여서는 염색쟁이가 될 수 없습니다.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떤 손을 거쳐 오고 또 누구에게 가는지 알아야 해요. 지금도 물들이는 계절엔 장똘뱅이들이 벌교로 모여듭니다. 무명 업고는 벌교 한가네로 가라, 짜투리나 삭은 무명도 더불어 사준다는 확신을 만드는데 수십 년이 걸렸어요."
찾아오면 그냥 돌려세우는 법 없이 좋은 값을 쳐준 세월로, 전국의 무명을 훤히 보는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눈 어두운 이들이 문화재가 되고 장인이 되는 구조가 안타깝습니다. 자기 물만 들이고 마는 이들이 이른바 '무식한 전문가'죠.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해요."
사회를 진단하는 그의 말은 매섭기는 한겨울 갯벌 추위요, 단호하기는 푸름을 낳은 쪽빛이었다. 거침없기로는 악한 왜인들이 뼈도 못추렸다 해서 '주먹자랑 말라'던 벌교땅의 성정, 한광석은 처음엔 작품에 놀라고, 다음엔 시대의식에 놀란다는 소문다웠다. 

"과거를 제대로 정리해야 오늘을 바로 살 수 있습니다. 무턱대고 서양의 것, 출처 불분명한 것들을 받아들이다보니 지금 우리는 우리 것이 뭔지도 몰라요. 과거정리를 잘해야 해요, 원불교도 마찬가집니다."

원불교다운 것이 무언지도 모른 채, 다른 종교를 따라하는데 급급하다는 그의 날카로운 지적. "소태산이야말로 민중의 주린 배를 먼저 채워줄 줄 알았던 진정한 성자입니다. 그 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게 성자고 종교 아닙니까. 그리고 저축조합, 영육쌍전, 무시선 무처선과 같은 문화로 다가갈 줄 알았어요."

국민소득 3만달러가 됐지만 늘 마음이 가난한 현대사회, 그이가 제안하는 것은 '뿌리깊은 나무 문화운동'이다. 한창기의 '반말없는 사회', '교육과정 개편을 요구하는 시민운동', '우리 문화를 통한 치유사업의 활성화' 등을 되살려 문화교육을 하되, 이를 유치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는 '사상적으로 기반이 있고 교육에 앞장서며 문화를 만들어내본' 원불교야 말로 가장 가능성있는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희망처럼 거대한 생명력을 머금은 우리 전통의 푸른 색 쪽빛. 언젠가 그가 '까마득한 색'이라고 했던 쪽은 봄의 생기로부터 시작해 여름의 푸름과 가을의 풍요, 겨울의 쉼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천지의 이치요 쪽씨의 삶이라면, 한광석 명장의 지금은 그 계절 중 어디쯤일까. 대종사를 알게 된 순간부터 "소태산께 갚아야 할 빚이 많다"고 확신했던 그이의 '뿌리깊은 나무 문화운동'은 곧 교단과 우리 사회에 쪽물처럼 곱게 스며들 것이다.

[2018년 1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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