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예진 교도] 따르릉~ "감사합니다. 예문여고입니다." "저, 김 선생님 좀 바꿔 주세요. 저는 졸업생인데 사법고시에 방금 합격해서 연락했어요." 순간 당황스러웠다. 사법고시 합격이라니. 내가 1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그 아이는 빈혈이 있어 얼굴이 늘 창백했다. 수업시간에도 말 한마디 없이 앉아 있던 소극적이고 성적도 그다지 좋지 않았던 아이었다. 늘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생각만 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 안쓰러워했던 아이다.

그 아이가 설마…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 장난인가 싶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2학년 어느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공부법을 듣고 따라해 보니 재밌고, 성적도 올랐다고 한다. 지방 대학에 입학했지만 서울권 대학 법대에 편입해 사법시험을 치른 것이다.

눈에 잘 띄지 않던 그 아이의 잠재력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놀라웠다. 그 후로 나는 학생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지금은 평범해 보이고 잘하는 것이 없어 보여도 저 속에는 무한한 잠재력이 숨어 있는 대단한 아이들이라고 여기게 됐다. '저 아이들이 바로 미래의 우리사회와 가정을 책임질 사람들이지. 한 명이라도 가벼이 봐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말 한마디라도 상처받지 않게 지도하려 애썼다.

또 어느 날은 교무실에 하얀 제복을 입은 똘똘하고 다부진 여학생이 "선생님" 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얼굴은 내가 알던 아이인데 목소리와 체격과 태도는 그 아이가 아니었다. 내 기억 속의 아이는 작고 통통한 몸매에 그저 착하고 순하기만 한 연약한 아이였다. 그런데 이 학생은 너무도 씩씩하고 자신감 넘치는 멋진 여성이었다. 너무 신기하고 반가워 무용담 같은 얘기를 재촉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학생은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배를 타고 세계를 누비고 싶다는 어릴 적 꿈과 확실한 직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해양대학교에 지원했다고 한다.

지옥같이 혹독한 훈련과정을 견뎠고 힘들다고 하는 승선 실습도 무사히 통과해 잘 적응하고 있으며 이젠 어떤 어려운 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해낼 자신이 있다며 활짝 웃었다. 날렵하지 않은 몸으로 얼마나 고생했기에 저리 몸이 날씬하고 탄탄해졌을까. 마음이 짠하고 아프면서도 대견했다. 수업시간에 가끔 그 아이가 생각나면 학생들에게 "안정되고 편한 길만 너무 찾지 말고 어렵고 힘들더라도 꿈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고 말한다. 

또 한 아이가 있다. 1·2학년 때 지각, 무단결석, 화장, 수업태도 불량 등 교칙이란 교칙은 다 어겨서 학생과에 매일 불려 다닌 학생이 있었다. 3학년 때 담임으로 만나 바짝 긴장하며 어쭙잖은 일에도 칭찬해 주고 장난도 곧잘 치며 1년을 지냈다. 그런 내 마음이 통했는지 그 학생은 고3 생활을 말썽 한번 안 피우고 졸업했고 모 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 2년쯤 지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내일 학교에 가도 되겠냐고 금방이라도 뛰어올 듯이 쾌활하게 묻기에 좋다고 했다. 1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안 오고 있지만 밉지가 않다. 평범하지 않았던 과거를 모두 잊고 아마 지금쯤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아직도 그를 기다린다. 

/예문여자고교

[2018년 1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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