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지난 시기 불교는 출가만 말하였다. 과거 불교 제도가 출세간 생활하는 승려를 본위로 하여 조직이 되어서, 세간 생활하는 일반 사람들은 그 제도가 맞지 아니하여, 누구나 참다운 불교 신자가 되기로 하면 세간 생활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직업까지 놓아버려야 했다. 그렇게 되고 보면 불법이 아무리 좋아도 많은 생령이 불은을 입기 어렵기에 원만한 대도라 할 수 없다고 하셨다.(〈정전〉총서편 2장 교법의 총설)
원불교는 제가를 말한다. 세간을 떠나는 '출가' 말고, 세간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가정을 안락하게 만드는 그런 '제가' 말이다. 제가의 요법은 과거 불교 제도의 한계를 극복해 새 시대 새 종교를 창안한 대종사의 경륜을 실현하는 시작점이며, 출세간이 아닌 세간 생활 가운데 불은을 입게 하려는 너른 교리이다. 정전의 서문에 해당하는 '총서편'에서 출가 승려를 본위로 하는 불교 제도의 한계와 그에 대한 대안을 말씀하신 것과 '최초법어'에서 '제가'를 일러주신 것은 동일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제가는 '살림과 살이'이다. 타자를 살리면서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경제(economy)의 어원은 살림(oikos)에서 왔다고 한다(〈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 신승철). 거대 담론의 의미가 강한 경제라는 말이 가정의 살림살이를 뜻하는 '오이코스'에서 왔다는 것은 뜻하는 바가 크다. 소태산 대종사가 '한 가정은 한 나라를 축소하여 놓은 것이요, 한 나라는 여러 가정들을 모아 놓은 것이니, 한 가정은 곧 작은 나라인 동시에 큰 나라의 근본이 된다'고 하신 말씀과 통한다. '한 가정이 곧 작은 나라'이니 '살림이 곧 나랏일'이고 '제가가 곧 세상일'이다. 더욱 깊이 제가의 요법을 들여다보고 실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의 위상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실제로 '큰일'을 하려면 가정을 돌아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스스로 '세상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흔히 '집안일'이란 말로 가정의 의미를 축소하고 약화시킨다.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살림들과 살림의 행위들은 그저 자잘한 일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는 또한 차별 의식의 한 표현이기도 한데, 말하자면 제가를 잘 하고 못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가정은 생태와 환경 문제, 경제 문제, 정치 문제, 교육 문제 등 거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산실과 같은 곳이자 마음공부의 바탕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불법이 곧 생활이고, 생활이 곧 불법'이라는 개교 표어가 그냥 나왔겠는가. '불법'이라는 큰 진리를 말하면서 거기에 '생활'을 대등하게 내세운다는 건 참으로 커다란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제가의 요법은 출가든 재가든, 공가든 사가든 모두 적용해야 마땅하다. 어느 경우든, 그리고 누구든, 한 가정과 같은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일과 집안일이 둘이 아니다. 크고 작음, 중요함과 사소함이 둘이 아니요, 공과 사가 둘이 아닌 것이다.
/원경고등학교
[2018년 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