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용 / 원불교사상연구원, 넥스트젠코리아 활동가, 댄스만달라 안내자
능성싱팩토리는 2014년 대만에서 시작된 청년 대안공동체로, 이곳에서는 선주민, 탈핵, 성소수자, 생태, 타이완독립국가 등 다양한 의견과 문화예술활동이 실천된다.

[원불교신문=송지용] 지난해 6월 고향 정읍에서 '있ㅅ는잔치'(세계생태마을 오세아니아·아시아 청년 축제)를 열고 원광대 박맹수 교수님을 모셔 동학 이야기를 들었다. 9월엔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원광대 대학원에 원불교학 전공으로 입학하게 됐고, 10월엔 '한일시민 동학여행'에 한국 청년들과 참여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과거 역사 안에서 서로 싸우던 한·중·일의 청년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생명의 길로 개벽을 여는 친구로서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1월 대만 '능성싱 팩토리'라는 청년 대안공동체에서 공연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세상은 은혜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을 내 안에 담는다면 은혜를 받는 것은 물론 나 또한 은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 라디오에서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걸까? 우리의 이전 세대, 우리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우리 세대뿐 아니라 온 지구생명과 미래세대까지 위협 받고 있다. 

문명의 문제, 대안은 없는 것일까

이것은 문명의 문제가 아닐까. 지금의 문명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거쳐 오늘날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자연을 착취한 문명이었다. 이 문명의 토대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대표되듯이 이성을 강조한 유럽 철학에 기초한 서구근대문명이었다.

인간을 자연 그리고 타인과 분리된 독립된 존재로 보고,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맹신하는 문명이 오늘날의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과 사람을 착취하며 대량 생산한 물건은 공정하지 않게 유통되고 소비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미세먼지, 바다의 미세플라스틱, 이상기후 등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서구식 근대문명에 대안은 없는 것일까? 근대문명은 서구에만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비서구권 국가들에서도 그러한 노력이 있었고 그에 따라 사상, 문화, 경제, 사회제도도 발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서구식 근대의 물결에 의해 좌절됐다.

19세기 서구 열강들이 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침략해올 때, 이 땅에서는 서구식 근대사상(제국주의)과 무기로 무장한 일본의 침략이 있었다. 그때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을 극복하고 안으로는 봉건적 조선의 신분질서와 제도를 극복하고자 일어났던 사상·종교·문화운동이 있었다. 그 시작은 개벽을 외치며 나온 동학이었다. 이 흐름은 사상·종교적으로는 원불교, 천도교, 증산교라고 하는 개벽 종교로 이어지고 운동·문화적 측면에서는 3·1운동, 5·18혁명 오늘날의 촛불혁명과 한살림 운동으로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근대 문명의 소용돌이 속 새로운 바람

현재는 미국중심의 세계질서가 중국과 동아시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남과 북 크게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커다란 대립 속에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근대 문명의 소용돌이에서 가장 중앙에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책임과 역할이 우리에게 있다고 느낀다. 변화의 시대 역사를 주도 했던 세대는 청년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청년, 나아가 한·중·일 동아시아의 청년에게는 이런 문명에 대안을 제시할 중대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종사는 "정신방면으로는 장차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제일가는 지도국이 될 것이다"고 했고 정산종사는 "새 세상의 대운은 성현 불보살들이 주장하나니 이 나라의 새로운 대도덕으로 장차 천하가 한 집안이 되리라, 세계대운이 이제는 동남으로 돌고 있으므로 앞으로 동남의 나라들이 차차 발전될 것이며 이 나라는 세계의 정신적 중심지가 되리라"고 말씀했다. 이제 동(남)아시아의 청년은 세계에 대안을 제시 할 수 있는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 하고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있ㅅ는잔치'에서 아시아 청년들이 박맹수 교수를 초청해 동학을 공부했다.

동학 '시천주', 원불교 '처처불상 사사불공'

대만의 능성싱 팩토리는 2014년에 시작된 청년 대안공동체다. 이곳의 친구들은 함께 거주하며 문화예술로 대안운동을 하고 있다. 선주민 운동(원주민 운동과 같은 말로 원주민이라는 말 안에 원시인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릴수 있기 때문에 이 용어를 사용한다) 탈핵운동, 성소수자 운동, 생태운동, 타이완 독립국가 운동 등을 문화예술과 연계해 퍼레이드, 전시, 포럼, 농부시장, 예술가 공간지원, 공간재생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여러 활동들 중 선주민운동의 구호가 눈에 띄었다.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다(nobody is an outsider)" 이것은 평화의 구호였다. 대만은 섬나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청나라의 침략과 일본에 의한 식민지시대가 있었고, 장제스가 세운 중화민국이 국호로 사용되지만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며 압박하는 중국에 의해 세계무대에서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최근 정권교체로 타이완이 중국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려는 흐름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의 선주민운동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주체성 지키며 나아가 평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선주민운동의 구호는 나에게 동학의 '시천주', 원불교의 '처처불상 사사불공'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 안에 불성이 깃들어 있으니, 나와 네가 평등하고, 외부인도 부처님처럼 마음을 열어 모셔준다는 말처럼 들렸다. 억압하고 경쟁하는 근대문명에 저항하여 살리고 모시며 협력하려는 동학과 원불교처럼 느껴졌다.

이 시대의 언어, 생활의 언어로 이야기

이 말을 공연에 사용하기로 했다. 공연은 동학의 '인내천', 원불교의 '일원상', 선주민운동의 'Nobody is an outsider'를 종이에 적고 일원상 안에 생명을 상징하는 새싹을 그려 넣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동학의 정신과 혁명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스토리를 표현하고 호남살풀이 이수자 김찬송님과 함께 살을 풀어냈다. 마지막으로 연주자들과 관객들이 함께 신성하고 연결되는 존재의 춤을 추며 공연을 마무리 지었다. 

반응은 열광적이었고 관심도 높아 몇몇 친구들이 물어왔다. 그러나 공연을 준비하는 중에도, 마친 후에도 개벽과 생명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나치게 종교적이거나 미신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 시대의 언어로 개발되고 실천해야 함을 느꼈다. 

원불교는 개벽을 이야기하는 최신의 언어고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최근 사드를 비롯한 현재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해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종사는 100년전에 불법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이야기하셨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시대와 대중의 생활과 동떨어져있다면 무의미할 것이다. 이제 다시 한 번 이 시대의 언어로, 우리 생활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실천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Nobody is an outsider'를 종이에 적고 일원상 안에 새싹을 그려 넣었다.

[2018년 2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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