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박성은 교무] 호주에서 대학을 다닐 때 일이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례를 주제로 토론을 유도했다. 각자의 해결방법을 발표하고, 교수는 발표자에게 다시 질문하는 것으로 평가를 대신한다.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스스로 점검하게 했다. 덕분에 나의 편견과 한계성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소태산의 깨달음의 준비도 '이 일을 어찌할까?'하는 질문이었다. 깨달음은 완성이 아니라 더 깊은 탐구의 시작인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부정하는 것으로 의식의 확장을 유도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상황성이다. 그래서 답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준비해야할 기본 원칙은 있다.      

서품 19장은 시대에 맞는 공부법으로 부처님과 같은 삼대력을 갖출 것을 당부하고 있다. 소태산의 처방은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화두로 던졌다. 잠자고 나면 새로운 단어들과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로봇 출가자에게 교화를 맡겨야 하는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이기적인 인간의 탐욕이 부르는 변화를 재앙으로 느끼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각자들은 지금 시대를 개벽시대, 황금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영적 성숙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시기로 보는 것이다.

과거에는 위에서 아래로 힘의 권력이 이동했다면, 지금은 아래에서 위로 참여하는 공동의 힘이 사회를 바꾸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 시대를 기회로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소태산의 개벽정신은 삼대력을 갖춘 실력자이다. 사물에 끌리지 않는 수양력, 일과 이치에 막힘없는 연구력 그리고 불의와 정의를 분석하고 실행하는 취사력이 그것이다.

뇌 과학의 관점에서도 진화는 균형 감각임을 강조한다. 휴식력, 주의력, 집중력을 측정하는 뇌기능은 편차가 심할수록 퇴화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기능 간 편차를 줄이는 훈련을 해야 전체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훈련모드에 집중하거나 주견과 아집이 강한 사람들의 특징은 좌뇌와 우뇌의 불균형이 심하게 나타난다.

이제는 수행 실력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시대가 됐다. 측정의 결과가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인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라면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   

과거에는 한 사람의 성자의 역할이 중요했고, 교단적 믿음을 따르는 사람이 많은 집단이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제 종교적 믿음의 힘이 아니라 법을 사용하고 효과를 보는 사람이 영웅이고 부처로 성장한다. 필요한 것을 위해서는 종교의 벽과 거리의 제약도 없이 찾아다니고 나누는 시대가 됐다. 깨달음과 성장의 영역이 종교의 전유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는  위기일까? 원불교는 위기인가? 우리가 느끼는 위기가 교단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종교성이 아니었다면, 마음을 공부하는 집으로 선포한 원불교의 시작은 분명히 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소태산의 정신이 시대의 대안과 영향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각자의 실력으로 답하고 또 질문해 보자. 그리고 내가 먼저 길이 되자.

※ 다음 호부터는 미주총부법인 이지은 교무의 실시품이 연재됩니다.

/와룡산수련원

[2018년 2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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