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소태산 대종사가 내놓은 영육쌍전법(〈정전〉수행편 16장)을 보면 그 내용은 아주 소략하지만 품고 있는 의미는 참으로 크다. '이제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되므로'라고 한 말씀은 겨우내 묵정밭을 갈아엎고 새 봄의 씨앗을 뿌리듯,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갈 비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육쌍전은 말 그대로 영혼과 육신, 즉 몸과 마음이 모두 온전하다는 뜻이지만, 그 속에는 정신과 물질, 도학과 과학, 이치와 일, 이론과 실천, 명분과 실질, 공부와 사업 등, 이항 대립으로 보이는 두 영역의 관계를 모두 담고 있다. 둘로 보이지만 둘이 아니며, 어느 하나만 주장하여 다른 하나를 극복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몸을 떠난 마음은 있을 수 없고, 마음이 없는 몸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에는 육신이나 물질의 영역에 속하는 건 금기시하는 풍토가 있었고, 그것이 도리어 생활상의 무능함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 되었음을, 그리고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음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영)와 생활(육)이 둘이 아닌 산 종교라야' 한다고 선언했다. 

일원상서원문에 대종사가 삼학을 표명한 구절을 보면,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라고 말씀했다. 마음을 강조하기 위해 몸을 소외시키지 않았다. 늘 이 말씀에 이르면 마음과 함께 몸을 생각한다. 나는 내 몸을 온전하게 잘 수호하고 있는지, 육신의 자력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우주의 표상이라고 하는 몸에 대해 알아가는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하여 마음공부는 마음만의 공부가 아니다. 심신 공부다. 몸 공부이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몸 공부에 등한시 한다면 이는 온전한 공부라 할 수 없다. 

물질이 발달함에 따라 점점 편리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지만 질병은 더욱 다양화되고, 의학은 더욱 발달하지만 몸의 자력은 약해지고 있다. 몸의 상품화와 몸에 대한 탐욕은 기승을 부리는데, 습관의 노예가 되어 건강한 몸의 길을 잃어버리고, 온갖 환경오염으로 시시각각 심신의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에 '영육쌍전'과 '심신수호'는 시급한 일이다. 

몸은 공부의 소중한 자산이다. 한 해를 새로 시작하면서 섭생을 '존절히' 하고, 요가든 계단 오르기든 걷기든, 잊어버렸거나 잃어버렸던 몸을 더 깊이 알고, 더 원만하게 지키고, 자력을 세워 몸을 더 잘 사용하는 공부를 '수행 삼아' 했으면 좋겠다. '선정상으로나 위생상으로나' 실로 유용하고 일거양득한 법을 찾아 실행했으면 좋겠다.

수많은 불치병 환자를 살려낸, 올해 실제 나이 110살이 되는 민간요법 치료사 장병두 선생의 건강 수칙을 보며 심신공부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1. 호흡은 길게, 음식은 적게 먹어라. 2. 약 대신 음식으로 치료하는 것이 진짜 건강 비결이다. 3. 귀와 손을 자극하고 발바닥을 때리면 건강에 좋다. 4. 마음이 병을 만들고, 또한 마음이 병을 치료한다. 5. 생각을 바꾸면 건강이 보인다. 6. 겸손하고 화내지 말고 봉사하며 살아야 건강하다. 7. 자연과 가까이 하라.  

/원경고등학교

[2018년 2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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