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여성의 뼈아픈 폭로를 공감·지지하는 'Me Too'운동
누구도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상 속 종교 역할은

김혜월 교도

[원불교신문=김혜월 교도]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에 대한 폭로의 파장이 연일 뉴스 지면을 달구고 있다. 2010년에 발생한 성추행사건과, 그에 대한 사후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검찰 내부조직의 행태에 수많은 질타가 가해지고 있는 중이다.

특히나 이 사건의 경우에는 성추행 당사자인 안태근 전 검사가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파면 당한 이후 대형교회 등에서 속죄의 세례를 받고 간증을 하고 다닌 것이 밝혀져서 더욱 많은 공분을 사고 있다.

4일 SBS에서 방영한 '미 투 나는 말한다'라는 프로그램에도 여성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나 역시 시간을 다투는 일이 쌓여있는 상태에서도 그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한 이후, 숨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집중해서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프로그램에서 다룬 대부분의 피해 여성들은 주변의 시선과 미래의 삶 등 자신이 아닌 외적인 요인 때문에 수치심과 분노를 혼자 삭여야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이 속한 조직 내에서 발생한 성추행, 특히 동료나 상급자에 의해 피해를 당한 경우에는 '문제'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조직의 보수적 특성 때문에 2, 3차 피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사례도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2, 3차 피해란, 성추행 피해여성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을 때, 조직 차원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제대로 조사한 후에 내부 공의를 거쳐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시켜서 또 다른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2, 3차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조직 내의 권력을 쥔 상급자 내지 남성들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자가 그렇게 입고 다녔으니…", "뭔가 여지를 줬던 거겠지" 에서부터, "혼자 참으면 온 조직이 조용할 텐데…", "조직을 먼저 생각해야지!"라는 식으로 내부 구성원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피해여성이 조직의 화합을 깨뜨리는 문제적 인물로 지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연 그 피해여성의 정당한 문제제기가 조직의 화합을 깨는 자기중심적 행동일까?

그 2, 3차 피해를 만드는 발원지는 대개 조직의 의사결정권을 쥔 상급자들로 이뤄진 회의이며, 그들에게 충실하게 협력하는 이들로 인해 조직 내의 여론으로 확산되는 사례들이 많이 보인다. 예의 그 SBS 프로그램에서는 심지어 한 국가의 거대 언론사들이 언론 거물의 성추행을 덮고, 피해여성을 '이지메' 시키는 데 앞장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조직 내에서 발생한 문제를 억지로 덮어놓는다 해도 그 조직의 생산성이 올라간다거나, 건강하게 유지될 수는 없다. 이미 많은 내부 구성원들(설령 그들이 침묵에 동조했다 하더라도)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으며,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문제를 덮은 사람들을 더 이상 인격적으로 존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직이나 사회가 아무리 침묵을 강요해도,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양심의 빛까지 가리지는 못한다. 수십 년 전에 발생한 사건을 정신적 고통 속에 묻어두고 있다가도 어느 날 섬광처럼 건드리는 계기(緣)가 주어지면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게 되어있다. 안태근 사건의 경우에는 박근혜정부의 몰락과 함께 검찰 내의 권력체계가 바뀐 것이 동기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Me Too'운동은 용감하게 제기한 성추행 피해자의 폭로에 자신들의 피해 경험을 꼬리 물듯 이어서 밝히는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커가고 있다. 피해여성들의 뼈아픈 폭로를 공감하고 지지해주며, 이를 커다란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남성 포함)이 있었기에 이러한 흐름이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그 절반이 성추행 피해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는 인류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으며, 그 사회 안의 나머지 절반도 언젠가는 자신과 가족이 이 문제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결국 누구도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상, 이는 전 인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힘들게 일어설 때, 우리는, 종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함께 각성해야 할 일이다.

/서울대종교문제연구소ㆍ화정교당

[2018년 2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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