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산과 황등호에 정신 모이어 
장엄하고 신성하게 법문세우고 
사은사요 삼강팔조 닦아가면서 
시방세계 넓은 교화 천만겁까지. 

산수 맑은 평화국에 성사(聖師)모시고 
수천명 대중생활 피와 땀으로 
이상적 문화건설 우리의 사명 
분투노력 쉬지 말고 천만겁까지.  

글/유산 유허일(1882~1958) 대봉도
출처/월보 제47호(원기18년 5월호) 


유산 선진은 원기17년(1932) 10월, 51세의 나이로 대종사를 만나 입교했다. 그리고 이듬해 출가했다. 독립운동가의 꿈을 키웠고 역사의식이 투철했던 유산 선진의 원불교 입문은 당시 영광에서는 선구적인 사건들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이 시조는 원기18년(1933) 52세의 나이로 전무출신을 서원하여 총부학원 교무로 첫 근무를 시작하고자 익산에 왔을 때 지은 것이다. 제목이 당시 공식명칭이었던 불법연구회 '입회기념가'로 선명하다. 

금마산을 검색해 보니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금마서동공원 일대로 나온다. 황등호는 일제시대 1937년 사라졌다고 한다. 당시 황등호는 일제가 쌀 수탈을 위해 완주에 경천저수지를 만들고 황등호 물을 모두 빼고 간척해서 논으로 만들어 분양을 했다는 자료가 있다. 

교단 초기 불법연구회는 신세계였음을 시조를 통해 느낄 수 있다. 꿈과 희망, 열정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던 이상향이었다. 선진들의 그 희열이 지금 우리를 있게 했다. 다시, 그 가슴 벅찬 회상공동체의 기쁨을 살려내야 하는 과제가 밀려온다.

/둔산교당

[2018년 2월 9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