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삼학수행의 원동력은 진행4조인 신분의성(信忿疑誠)이다. 신분의는 간화선 수행의 주창자 대해종고가 〈서장〉에서 제시한 대신근(大信根) 및 대의정(大疑情)과 이를 계승한  고봉원묘가 〈선요〉에서 세운 대분지(大憤志)에서 유래한다.

어릴 때부터 의문으로부터 시작해 수행세계에 들었던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 여러 경전과 함께 소위 이 간화삼요가 잘 드러난 고봉선사의 〈선요〉를 읽었다. 수행 방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삼학과 간화선 수행 모두 자타가 깨달음을 얻어 이 세계를 불국토로 만들고자 하는 대승의 궁극목표는 차이가 없음을 확인하셨으리라 본다. 

만사를 정하는 원동력인 믿음은 모든 성공의 어머니이다. 만물이 성장하는 것은 대지에 뿌리박은 신근에 의한 것이다. 뿌리가 깊은 만큼 큰 나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큰 믿음이라야 큰 성공이 있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태산처럼 진리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역경난경에서 보호해 준다.

또한 〈화엄경〉의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차별이 없다는 말씀을 믿는 일이다. 자성청정심, 법성, 일심, 원각, 일물, 본래면목 등으로 부르는 불성에 대한 믿음으로 마침내 부처와 같이 닦음이 없는 닦음, 증득함이 없는 증득의 경지에까지 나아가도록 수행하는 것이다.

분지(憤志)나 분심(忿心)의 근본적 뜻은 차이가 없다. 용장한 전진심이 말하듯 분심은 지사나 의사들처럼 뜻을 이루지 못해 분개하고 몸부림치며, 다시 자신을 정비하여 목표를 향해 의지를 다지는 마음이다.

간화선 수행에서 대분지는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를 만났을 때, 당장 한 칼로 두 동강을 내고자 하는 심정이라고 한다. 또한 확철대오하겠다는 분심으로 번뇌망상을 일도양단하여 화두를 더욱 굳게 챙기며 정진하는 자세이다. 대산종사는 부처는 누구며, 성현은 누구냐, 나도 하면 될 수 있다는 용맹정진심을 정분(正忿)이라고 했다. 

의심은 사리에 대한 이해는 물론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원동력이다. 실제로 '내가 스스로 마음에서 저절로 깨우쳐 아는 것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닫게 되고,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는다. 간화선에서 대의정은 대의단(大疑團)으로 가는 길을 말한다.

대의단은 일체의 사량분별이 끊어진 상태에서 오직 화두로 일념이 된 상태이다. 동과 정이 한결같은 동정일여, 꿈속에서도 한결같은 몽중일여, 깨어있으나 잠을 자나 한결같은 오매일여가 되어야 한다. 심신과 천지가 의심으로 혼연일체가 된 상태이다. 소태산이 그랬던 것처럼 의심에 이끌려 진실의 저편으로 건너가는 과정이다. 

성심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간단없는 마음이다. 유교의 핵심은 이 성이다. 〈중용〉에서는 "성은 하늘의 길이요, 성하려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라고 한다. 천지의 길을 인간은 마땅히 본받아야 한다. 천지팔도 가운데 지극히 정성한 도가 바로 이것이다. 성현들은 이 길을 실천한 분들이다.

삼학수행은 천지와 우주의 도를 따라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시천주(侍天主) 즉, 내 마음에 한울님을 모시고 살며, 밥 먹을 때나 일할 때나 일거수일투족 그 분에게 고하며 사는 삶이다. 희로애락과 우비고뇌의 파도가 넘실대는 삶 속에서 한울님과 함께 하는 삶이 곧 법신불을 신앙하고 수행하는 삶이다. 부처를 완성시키는 신의 한수가 이 성이다. 

/원광대학교

[2018년 2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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