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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 대전충남교구 서대전교당 박상구 교도
신앙인 / 대전충남교구 서대전교당 박상구 교도
  • 이여원 기자
  • 승인 2018.02.21
  • 호수 18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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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무결석 법회' 자신과의 약속 6년째 지켜
주인된 마음으로 교당 신축 봉불위해 일심합력
자녀, 며느리, 손자까지 모두 입교시킨 일원가족

'대종사님 심통제자 되는 서원 일념으로'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어머니(최보월화 교도) 고향이 제원이었어요. 제원교당에 다니셨는데, 법회를 1·2부로 나눠서 볼 만큼 교화가 잘 됐어요. 학생법회도 따로 봤는데, 친구들이 많아서 참 재미있었죠."  

서대전교당 정산 박상구 교도회장(72·正山 朴象究).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의 기억 속 제원교당은 '크고 참 재미있었던 교당'이었다. 

그렇게 '친구 많고 재미있는 교당'을 다니기 위해 4㎞씩 걸어 다녔던, 새삼 행복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그. 이후 군대를 다녀오고 금산군청에 근무하면서 가정을 일구기까지, 삶의 일선에서 그는 교당을 한동안 잊고 지내야 했다.

"원기68년 대전으로 이사 나오면서 서대전교당에 다니게 됐어요. 정년퇴임하고는 열심히 교당에 다녔죠. 원기97년 교도회장을 맡으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법회에 빠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죠." 그리고 그는 지난해까지 6년 동안 단 한 번도 법회에 빠지지 않았다. 자신과의 약속은 그대로가 그의 신앙을 지켜내는 흔들림 없는 주춧돌 같은 것이었다. 

"아이들 결혼식은 물론, 친척 모임도 모두 토요일에 했어요. 작년에 몸이 아파서 병원에 2주정도 입원해 있었는데, 일요일 외출증을 끊어달라고 요청했어요. 몸 상태로는 외출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외출 허락안하면 퇴원하겠다고 반 협박을 했죠.(웃음)" 집안의 모든 대소사는 토요일에 진행할 것, 그것은 일가친척들도 지켜야 할 불문율이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게 지켜지는 불문율은 그의 몸이 아플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당에서 천일기도를 드리고 있어요. 매일 오전5시 교무님과 함께 천일기도 드리고, 좌선하고, 저녁 심고 모시고. 특별히 수행이라고 하기도 부끄럽지요." "대전충남교구에서 공동 유·무념으로 감사일기 쓰기, 1분선하기, 새 인연 맺기, 단마다 이웃불공하기 등을 정했는데, 감사일기 쓰기와 1분선하기를 매일 실천하려고 노력해요."

매일 감사일기와 상시일기를 쓰고, 조석으로 교전 읽기와 개인 유·무념 공부 실천하기. 그에게 수행은 순간순간의 생활일 터, 그래서 특별하지도, 내세울만한 것도 없는 일상과 다름이 없다. 

그는 교당 신축 봉불식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대전교당은 지난해 5월 대지면적 502㎡, 연면적 661㎡으로 3층 건물을 신축했다. 1층은 벽이 없는 주차장으로 화단과 벤치를 설치해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교당이 되도록 설계했다. 2층 생활관, 3층 대각전은 넓은 교화공간으로 다양한 법회와 훈련이 가능하도록 했다. 

"원기98년 주임 교무(이봉원 교무)님이 부임해 교화협의회에서 교당 신축을 결의하고, 원기101년 8월 기공식을 했어요. 그리고 지난해 5월 신축 봉불식을 갖기까지 교무님과 교도들이 정말 많은 고생을 했어요. 특히 교무님의 심적 중압감이 크셨을 거예요. 지금도 생각하면 죄송스러워요."  

노후 된 교당 건물을 헐어내고, 일요법회를 원광대 대전치과병원 회의실에서 진행하면서 여름과 겨울을 보내야 했다. 넉넉지 않은 교당형편에 교도들은 자발적으로 적금을 들어 한 달에 6백 여 만원씩 정제를 모았다. 재가출가 교도 모두가 교당의 주인이었고, 교당 일이 바로 자신의 일이었다.

"교도들 서원이 교당 신축불사였어요. 그러니 다만 돈 만원이라도 남는 장사면 무슨 일이든 했지요. 굴비도 떼어다가 팔고, 생도라지도 까서 팔고, 3.1절 산상기도 때는 커피도 한잔에 500원씩 팔았어요. 가을에 모과 장사도 했지요." 

원기101년 1월에 시작한 교당 신축불사 1000일 기도도 올해 9월이면 회향식을 한다. 모든 역경을 함께 극복해 준 교도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서 '큰 일'을 해낸 주임교무에게 눈물겨울 만큼 고맙다는 말을 끝내 잇지 못하는 그다.    

6년 임기를 마친 그는 올해 교도들의 권유로 다시 교도회장직을 맡았다. 그가 교도회장을 수락한 속내가 있다. 교당 신축하느라 다소 남아있는 빚을, 그는 3년 임기동안 다 갚을 생각이다. 이를 위해 '남을 원망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챙겨보고, 남에게 존경 받으려 하기보다 내가 먼저 남을 존경하며 감사하는 삶', 그는 이렇게 교도들과 법정을 나누며 합력하겠노라 다짐한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가족교화.

자녀와 며느리, 손자들까지 모두 입교시킨 일원 가족인 그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법문은 수행편 59장. '심전을 잘 계발하는 사람이 밭에 잡초가 나면 매고 또 매어 잡초는 없애고 농작물만 골라 가꾸어 가을에 많은 수확을 얻는 것 같이' 그는 좋은 농부가 되고자 한다. 좋은 농부, 그는 오늘도 마음 밭을 성실히 가꿀 터이다.

[2018년 2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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