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수 교사

지난해 12월1일, 나는 홀로 2학년 학년실에 앉아 1년 동안 지내온 일들을 떠올리며 '교사는 무엇으로 살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2주 전이었다. 이른 아침에 학교 4층 복도를 지나는데, "안녕하세요" 하고 한 학생이 인사를 했다. 우리 반 희경이었다. 나는 내심 놀라고 기뻤다.

희경이는 올해 2학년 부장을 맡아 쌍둥이 언니와 함께 학교에 일찍 온다. 희경이의 언니 은경이는 1학년 때 내가 담임을 맡았고 동아리 활동도 같이 하고 있어 친근한데, 희경이는 솔직히 말을 붙이기가 어렵다. 

평소 아침 일찍 복도를 지나가다 교실에 일찍 나와 앉아 있는 희경이에게 아는 척을 해도 별 반응이 없었다. 1학기 때는 내가 하는 말에 한두 번씩 약간 항의가 섞인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런 희경이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오니 기쁜 일이다.

그리고 학생들 중에는 내가 복도를 지날 때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는 이들이 있다. 혜은이가 특히 그랬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금요일 아침마다 영어듣기 대신에 '생각 넓히기' 시간을 갖기로 했다.

EBS교육방송이 만든 '지식채널e'를 보면서 자신이 느낀 점을 글로 써서 내게 했다. 그 중에 10여 편을 골라 자료로 만들어 게시했다. 그런데 1회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혜은이의 글이 단연 눈에 띄었다. 그 뒤로도 혜은이의 글은 늘 뽑혔다. 그러기를 수차례, 어느 날부터 복도에서 만난 혜은이는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해오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쁨은 무엇보다 컸다. 

지난해 11월 초, 나는 안동문화체험활동을 계획하면서 학생들의 신청을 받았다. 은영이는 늦게 신청해서 예비후보에 들었다. 최종 참가자를 확인했더니 사정이 생긴 학생이 있어 버스 좌석이 두 개 남았다. 은영이에게 의사를 묻는데 마침 민주가 옆에 있었다. 은영이가 민주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기회다 싶어 체험활동의 의미에 대해 잠깐 말했다. 민주도 결국 안동문화체험활동을 함께 하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기뻤다.

안동문화체험활동을 마치고 온 후 은영이에게 민주는 문화체험활동이 어땠는지 묻기도 했다. 요즘은 수업시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주 이름을 부른다. 여전히 또렷한 민주의 대답소리는 듣기 어렵다. 그러나 고개를 드는 횟수가 많아져서 민주의 얼굴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학생들과 비교적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다투기도 한다. 학생을 나무라거나 학생들과 다투었을 때 나에게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다툰 후 다음 날 만났을 때는 어제 일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다. 

지난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서서 생각했다.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랑'이라고 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큰 말보다는 '관심'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요즘은 학생들이 어떤 형편에 처해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교사에게는 학생들이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그 미세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금정여자고등학교

[2018년 2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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