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요도는 사은사요이며, 공부의 요도는 삼학팔조이다. 두 요도의 관계는 손바닥의 앞뒷면과 같다. 그 관계를 전자는 환자를 치료하는 약재로, 후자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술로 밝혀놓았다.

환자는 바로 무명에 뒤덮여 있는 우리 자신이다. 인류는 이성의 총아인 과학을 발전시키고 있음에도 여전히 불안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는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으며,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서조차도 공공연히 전쟁이라는 말을 붙여 쓰고 있을 정도로 인간은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 전체가 이러한 무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아프다고 먼저 고백할 필요가 있다. 세계의 모든 객관적 지표는 인간 스스로 제어하기 힘든 상황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지구차원의 환경오염, 인구폭발, 식량과 자원의 한계, 생태계의 파괴, 동식물의 멸종과 같은 거시적 문제를 포함해서 정치·사회·문화적 갈등과 분열, 일상 속의 편견과 멸시, 타자를 향한 증오와 폭력 등 다양한 형태의 고통을 매일매일 겪고 있거나 목격하고 있다. 

바로 인생과 공부의 요도가 우리 인류에게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적·외적 한계와 고통을 우리가 인식하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주체인 인간 스스로 마음병 의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공부의 근본인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 인류 전체는 사실 고통을 교훈삼아 지구라는 대학 속에서 함께 공부하는 중이다. 그 속에서 마땅히 배워야 할 교양과목이 바로 사은사요이며 삼학팔조인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업장을 녹이고 청정하게 할 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공업(共業) 또한 바르고 청정하게 해야 마음공부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사은사요가 약재인 이유는 우리가 법신불 진리의 무한한 대은(大恩) 속에 존재하며, 그 은혜를 선험적으로 인식하고 보은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도리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세계의 모든 문제는 이 대은을 망각함으로써 발생한다. 인간과 사회와 대자연에 대한 보은행이 바로 불공이다. 모든 존재는 법신불 진리의 화현인 동시에 나의 존재 근거가 된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며, 보은불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은혜의 약재를 잘 구입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과 인류의 마음을 치유하는 지름길이 된다. 

그리고 그 약재가 가득 쌓인 마음을 의술인 삼학의 용광로에서 쪄냄으로써 환골탈태한 부처를 완성하게 된다. 삼학은 삼세의 모든 부처를 만드는 대로(大路)인 셈이다. 우리가 윤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음의 속성인 지정의 삼방면의 능력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다. 인류학자 지나 서미나라는 〈윤회의 비밀〉에서 이 점을 잘 밝히고 있다. 우주 내에서 우리 영혼은 매 생애마다 하나의 공부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 과정의 끝은 개인의 성불이라는 졸업이지만 보은의 또 다른 의미인, 세계를 향한 제중의 회향을 통해 우주 전체의 성불로 나아가야 한다. 나의 삶을 치료하고, 세상을 치료한다는 제생의세야말로 영생의 삶의 목표를 잘 보여준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깨어나야 한다. 앞뒤 분간 되지 않는 미몽(迷夢)에서 벗어나 자신의 실체를 그대로 보는 일이 시급하다. 도문(道門)은 그 순간 빗장을 푼다. 

[2018년 3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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