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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문답/ 이정택 원로교무-신앙문 '사은' 일문일답
교리문답/ 이정택 원로교무-신앙문 '사은' 일문일답
  • 유원경 기자
  • 승인 2018.03.07
  • 호수 18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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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 '은'과 '해'의 상대적 개념이 아닌 우주생명의 본질
없어서는 살수 없는 관계에 입각했기에 절대적인 은혜
나라는 존재, 일원의 위력을 담는 그릇이고 활용하는 주체
신앙생활속에서 보은불공을 하지만 시비이해가 계속되는 복잡한  인간사에 때론 처처불상 사사불공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본다. 사은의 교법을 공부하면서도 대종사가 밝혀준 본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사은이 왜 절대적 은혜이며, 체 받는 공부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사은장에 제시한 내용 중 의심이 되는 부분을 공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산 이정택(展山 李正宅) 원로교무를  찾아 문답했다.

일원상의 내역 '사은', 우주생명의 본질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사은을 절대 은이라고 하고 모두가 은혜라고도 한다. 하지만 시비이해 속에서 억울하게 당하는 경계가 있다. 한 예로 농부가 농사를 짓다 태풍으로 밭이 다 망가지게 되면 생계의 위협도 느끼며 원망심이 일어난다. 인과라고 하지만 어떻게 은혜로 받아들이며, 어떻게 신앙을 해야 하나
이같은 예에서는 자연적 현상을 놓고 인간이 받아들일 때 길이냐 흉이냐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천지자연이라는 것은 음양상승의 이치로 순환무궁하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현상적인 삶은 상대성을 떠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은(恩)'이 있으면 '해(害)'가 따르기 마련인데, 원불교에서 말하는 사은은 '은'이나 '해'가 상반되는 상대적인 의미의 '은'이 아니라 법신불의 진리에 입각한 우주생명의 본질 그 자체다. 그 자체로서의 절대적 '은'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은혜다. 

그런 차원에서 상대성을 벗어난 절대 은으로서의 신앙, 나 자신과 우주만유의 본원, 또는 우주만유의 본성에 입각해서 파악된 '은'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일체의 상대성이 개입될 수 없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에 입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다'라고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존재가 항상 주변의 조건들에 의해서 존재되는 입장에서 연기론적 해석이 필요하다.

옛말에 '장마가 길어지면 보은청산 색시들 창을 열고 눈물 흘리고, 장마가 짧아지면 회령갑산 색시들은 삼대 흔들며 눈물 흘린다'는 말이 있다. 보은청산은 대추가 많은 곳이라 장마가 길어지면 대추가 안 열리고, 회령갑산 이쪽은 비가 적게 오면 삼이 자라지 않는다.

완전히 상대적이다. 천지자연이나 우주는 거대한 관현악단처럼 개개의 사물들은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며 환경들이 다르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밑바탕이 있어 서로 상호적인 협력관계를 이루고 있다. 우리들이 봐야할 것은, 시간적으로는 멀리 삼세를 일관해 인과 윤회를 생각해야 하고, 공간적으로는 시방에 두루 관계되는 연기로 봐야 한다. 그런 신념으로 보면 처처불에 대한 사사불공의 삶으로 일관되는 신앙의 자세가 나오지 않겠는가.  


-천지보은의 조목에 천지팔도의 '체 받는다'는 뜻과 방법은 어떤 것인가, 천지의 지극히 밝은 도로 예를 들자면.
체라고 하는 것은 사물의 본체, 근본적인 것을 말하는데, 상주불변하는 진리의 본래모습을 우리가 행동으로 받아 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서예가들이 스승의 서체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체줄 잡는다고 하는데, 우리도 체줄 잡듯 일원상의 진리를 닮아가기 위해 진리의 모습을 닮아가는 표본으로 삼는 것이 체 받는 것이다.

일원의 진리가 천지를 통해서 나타날 때 지극히 밝게 나타나는 것은 소소영령한 천지의 식이라고 대종사가 말해줬다. 그런 천지의 지극히 밝은 도가 있기 때문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천지의 식은 그 아는 것이 우리 인간하고 다른 것이 있다. 무념 가운데 행하는 식이며 상 없는 가운데 나타나는 식이다. 또한 공정하고 원만해서 삿됨이 없다. 인간은 희로애락에 집착하는데 그것과는 다른 것이 천지의 식이다. 천지의 밝은 도는 그런 것이다. 

천지의 밝은 도를 체 받는 사람은 인과의 밝은 도를 알아서 떳떳한 길을 가는 사람이다. 우리나라가 촛불시민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며, 국정농단의 악행이 드러나 처벌받는 이들을 보게 된다. 과보는 반드시 받는다는 것을 알아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천지의 밝은 도를 체 받아 실행하는 보은자라 할 수 있다.


-응용무념의 도가 천지팔도의 대표가 되는 이유와 응용무념의 도로써 천지합일 되는 내역은.
경계를 대하여 대응해 쓴다는 것이 응용이고, 관념과 상없이 응용하는 것을 응용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라고 천도품에 나온다.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천지팔도가 운행되어지기 때문에 응용무념의 도가 대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천지는 무위이화로 지극히 밝고 정성하고 공정하다. 그렇게 천지가 관념과 상이 없이 은혜를 나투게 되는 것이다. 

천지합일의 내역은 영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주를 보게 되면 천지영기 아심정(天地靈氣 我心定). 천지의 신령스런 기운이 내 마음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만사여의 아심통(萬事如意 我心通), 모든 일들이 내 마음과 같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천지같은 심법을 쓰니 천지의 큰 은혜와 위력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천지여아 동일체(天地與我 同一體), 천지와 내가 더불어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인간을 소천지라고 했지 않는가, 소우주라는 말이다. 이 소우주가 대우주와 합쳐지면, 대령(大靈)과 개령(個靈)이 하나가 된다. 우주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아여천지 동심정(我與天地 同心正), 그래서 항상 마음을 쓸 때 내가 천지와 같이 바르게 된다.

대종사는 정신수양을 설명하면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라고 했고, 금강경에서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즉, 주한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했다. 응용무념의 도를 체 받는 것은 분별성과 주착심없이 그 마음을 내어 천지팔도의 위력을 체 받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천지합일이 되는 내역으로 볼 수 있다.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를 빠짐없이 밟는 것이 효인 까닭은.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는 스스로 공부하는데 요긴한 길이고 성불에 중점을 뒀다. 공부의 요도가 성불의 길이라면 인생의 요도는 제중의 길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공부의 요도로 자기완성의 길을 찾아 지혜가 밝아지고 성불하면 부모님이 희사위에 오르게 된다. 

유가의 효경에서는 '부모를 직접 받드는 것은 효의 시작이요, 입신양명으로 부모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것은 효의 마침이다'고 말한 예가 있다. 우리회상은 정사 이상의 부모님을 희사위에 올려드리고 육일대재와 명절대재 때마다 세세생생 존호를 바치며 그분들을 드러낸다. 의식주를 마련해 봉양하는 것이 일생의 효라면, 희사위에 올려드려 법연을 깊게하고 법공양을 받게 하는 것은 영생의 의식주를 공양하는 것이니 영원한 효를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를 유루(有漏) 없이 밟으면 나도 좋지만, 부모님의 공덕을 올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영생의 앞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부모은에서 이 몸은 만사만리의 근본이라 했다. 만사만리의 개념은 무엇이고, 몸이 없으면 천도나 수라 등의 세계에서는 복을 짓지 못하고 진급하지 못하는가
불지품에 "천지에 아무리 무궁한 이치가 있고 위력이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그 도를 보아다가 쓰지 아니하면 천지는 한 빈 껍질에 불과할 것이어늘"이라고 했다. 나라는 존재는 몸과 마음 두 가지가 합일된 체로서 일원의 위력을 담는 그릇이고 활용하는 주체다. '만사만리의 근본되는 이 몸'이란 그런 뜻이다.

또한 옛말에 천도의 세계는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 했다. 복이 다하면 떨어진다는 말이다. 복을 많이 지으면 천상계에 가지만 계속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제중의 길이 있거나 복을 지을 방법이 없으니 지은 복이 다되면 내려오는 것이다.

부처도 인간의 몸을 받아야 복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몸을 받고 제도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천상계에서 보림함축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복을 지으려면 인간의 몸을 받아 중생제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계속 천상에 머물면 편할지 몰라도, 사람으로 태어나야 중생을 제도하고 복을 지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다. 육도세계에서 인도가 중요한 것이 이 때문이며, '만사만리의 근본이 되는 이 몸'이 갖고 있는 의미도 또한 이것이라 하겠다. 

[2018년 3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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