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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선 도무 교화자의 삶 1. 죽을 때 웃을 수 있는 삶
구도선 도무 교화자의 삶 1. 죽을 때 웃을 수 있는 삶
  • 구도선 도무
  • 승인 2018.03.07
  • 호수 18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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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고등학교 법당에서 만난 원불교에 흠뻑 젖어들어
이타적 삶과 자아성찰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는 확신

[원불교신문=구도선 도무] 원불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큰누나가 원광여자중학교를 다닐 때인 것 같다. 시골에 살던 나는 저녁에 소 여물을 삶기 위해서 불을 때곤 했다. 불을 지피는 중에 검정색 표지의 작은 책자를 보게 됐다. <원불교 교전>이라고 써 있었다. 책을 펼치니 <정전>이라고 써진 부분이 나왔다. 나는 <정전>을 훑어보면서 '이건 뭐지?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지나쳤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원불교를 다시 알게 된 것은 원광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면서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자란 나는 세계적인 기술자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꿈이었다.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이유는 이 세상 어려운 사람을 마음껏 도와주는 사회사업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가정 형편으로 인해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마음껏 돕고 싶었다. 그래서 인문계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일찍 기술을 배워서 가계에 도움이 되고 나의 길을 걷고자 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작성할 때였다. 나는 아버지에는 "저는 기계공고를 가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세요"라고 여쭈었다. 찬성해 줄 줄 알았던 아버지는 예상 밖으로 '기계공고 가서 평생 손에 기름 묻히고 살고 싶냐?'라며 반대했다. 그리고 한 말씀 더 했다. "너 그렇게 하라고 고향인 구례를 뒤로하고 여기로 이사 온 게 아니다!"라고 하며 인문계를 지원하라고 했다. 

인문계 지원을 막상 생각하자니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앞으로 대학을 들어간다 해도 등록금을 어떻게 낼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그 당시에도 생활보호대상자로 중·고등학교는 등록금이 면제돼 있었다. 하지만 대학까지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일단 아버지 뜻에 따라 인문계 고등학교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래서 배정받은 곳이 바로 원광고등학교였다. 원불교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지금 출가한 삶까지 이어지게 한 한 줄기 인연이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원광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당시 철학선생님으로 재직했던 이선묵 교무님을 만나 원불교에 입교했다. 하지만 제대로 법당 생활과 법회에 참가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법당 교무님이었던 배현송 교무님을 만나면서부터다.

그 시절 1년간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신앙 생활도 하며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보냈다. 법회뿐만 아니라 기도라는 것도 처음 해보게 되었고, 경강이나 모든 것이 처음 접하게 된 것들이었지만 그 1년간 생활은 나를 원불교에 흠뻑 젖어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시절을 보내던 12월 어느  날이었다. 총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나는 교무님이 어서 그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교무님은 말씀하지 않았다. 학생교화에 정성을 다하는 교무님이 이런 중요한 행사를 왜 말씀해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가만히 교무님에게 여쭈었다. 총부에 훈련이 있어 참가하고 싶다고. 교무님은 반가워하며 그 훈련에 보내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신성회 제1회 훈련이었다.

신성회 훈련을 받으면서 원불교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졌다. 그리고 살며시 내 자신에게 출가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 그리고 고3 집안의 반대와 미래에 대한 불확신 속에서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몇 날 며칠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한 생을 잘 살았다고 생각하려면 어떻게 사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조용히 누워 죽음을 맞이할 때 '나는 이 생을 잘 살았는가'하며 자문자답하고 있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생을 잘 살았다고 생각하려면 어떠한 삶일까'란 답은 죽을 때 웃을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이타적 삶과 자아성찰이야말로 최고의 삶일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런 충분한 고민이 있은 뒤에 나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출가'의 삶이 답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과 소신을 집안에 말씀드리니 부모님도 충분히 공감해주고 동의해 주었다.

/원불교사상연구원

[2018년 3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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